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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May 23. 2022

나는 언제쯤 해방이 될 수 있을까?

내 영혼의 느낌을 따를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순간 

대사 하나하나 마음을 쿡쿡 찌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어제 창희가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영혼이 알았던 게 이런거다."

"영혼이 먼저 알아. 그래서 그냥 몸이 가."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일들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일인데 그냥 해야할 것 같은 일이 있고,

논리적으로는 설득이 안되지만 그만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유없이 좋은 사람이 있는 한편 이유없이 싫은 사람도 있다.


영혼의 느낌은 대부분 맞다고 생각한다.

단, 중요한 건 그 느낌을 우리는 정말 제대로 느끼는 법을 잃어버렸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직관이라 착각하거나,

먼지 가득낀 마음의 장난을 영혼의 울림이라 착각하며 마음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 읽었던 책 <신과 나눈 이야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신은 인간에게 느낌으로 답을 알려주지만, 인간은 어떻게든 그 느낌을 무시하거나 듣지 않거나 피하거나 왜곡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는 웃픈 이야기.


나는 느낌을 꽤나 잘 느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느낌을 내 생각으로 꽤나 많이 왜곡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되었다.


긍정적인 느낌, 내 생각의 방향과 일치하는 느낌은 대부분 잘 느껴주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문제는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고정관념에 반하거나 나의 두려움을 건드리는 느낌이 찾아올때이다.

이런 느낌이 찾아오면 나는 안간힘을 써서 이 느낌을 생각으로 무력화시킨다.


"너, 지금 회피하는 거야. 직면해야지."

"성장에는 언제나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견뎌내야해. 이겨내야해."

"이걸 극복하면 넌 더 성장해 있을거야."


그리고 이 전략은 꽤나 잘 먹혔고, 어찌보면 나는 이 전략 덕분에

진짜 내 가슴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 머리가 계획한대로 나름 자잘한 성공들을 이루며 살아왔다.




임계점이라는 것이 있다. 물은 99도까지는 기체가 되지 않는데, 딱 1도씨의 차이로 기화가 된다.

같은 원자를 가지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의 물체로 바뀌는 것이다.

지금 나는 딱 그 임계점에 와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 가슴이 툭툭 던지는 느낌에, 더이상 생각이 설자리가 사라져 가는 것을 매일 느낀다.


확실히 느낌은 생각의 영역이 아니다.

나의 해방일지 창희의 말처럼, 영혼은 알고 있다. 처음부터 늘 그냥 알고 있다.

단지, 나의 욕심과, 나의 에고와, 주변의 투사와 기대와 덕지덕지 묻은 이런저런 것들로 그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명상을 하고, 수련을 하고, 책을 읽고,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아주 잠깐이지만, 나를 겹겹이 싸고 있던 에고와 투사와 기대와 욕심 사이에 틈이 생긴다.

그 틈을 뚫고 느낌이 들어온다.

내가 더 선명해지고 명료해질수록 그 느낌은 더 강렬하게 찾아온다.




사실, 알고 있다. 이 느낌을 꽤 오래 전부터 느껴왔다는 것을. 

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해서 피해왔다는 것을. 


그래서 이 느낌이 때때로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절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저질러 버릴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또한 알고 있다. 한 번 느낀 느낌을 절대 무를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결국은 이 느낌을 따르는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아마도. 이 느낌을 따라가기 시작할 때, 나에게도 진정한 해방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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