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여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여름에는 왠지 세포 하나하나 살아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여름밤 산책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초록빛이 가득하다. 비를 맞아서 무성하게 솟아난 잡초의 생명력과 온갖 이름모를 식물들의 생명력에 감탄하게 되는 한여름.
8월은 왠지 여름의 끝자락 같아서 아쉬운데, 7월은 아직 여름의 초입이라 반가운 마음만 한가득 즐길 수 있다. 2022년의 7월, 나에게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7월의 소비 : 나의 첫 중고차
태어나서 처음 차를 샀다. 작년까지는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차 없이도 어디든 쉽게 갈 수 있거니와 차를 사면 세차도 해야하고 주기적으로 관리도 받아야하고, 보험료며 세금이며 신경쓸 것들이 많아진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면허 딴 후로 단 한 번도 운전을 한 적이 없어서 다시 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그런데 작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는 것은 단순히 소유의 개념을 넘어서 차를 통해 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준다는 그런 생각. 나는 그럼 어떤 경험들을 놓치고 있는 걸까? 단순히 혼자 제주도에서 렌트카 운전을 못한다는 실용적인 불편함말고도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꽤나 다양한 경험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 이제는 차를 통해 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들을 해보자.
사실 이 결심을 하고도 차를 사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사 오기 전 살던 집은 주차가 불가능한 집이었고, 이사를 온 후에도 이중주차를 해야하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주차난을 바라보며 과연 차를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꽤나 오랫동안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친구가 중고차를 판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그 친구의 차를 사지는 않았지만 그 이야기가 트리거가 되어 충동구매처럼 바로 중고차를 구매해버렸다.
내가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는 꽤나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고 내가 선택한 목적지까지 내가 선택한 길로 달리는 그 기분은 묘한 통제감을 준다. 물론 네비를 잘못봐서 길을 잘못들고, 차선을 잘못들어가서 차선 바꾸느라 진땀 빼는 일들도 종종 일어나긴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나에게는 새로운 배움이자 놀이 같다.
오늘도 30키로를 달려 인터뷰를 하나 하고, 다시 30키로를 달려 집으로 왔다.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면 왠지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차박도 하고 싶고, 혼자 차를 몰고 지방에도 훌쩍 다녀와야지.
내가 좋아하는 7월의 흔적들 : 금요일 밤의 맥주와 안양천 산책
요즘에는 일주일에 목, 금 이틀만 출근을 한다.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서울 여행을 하듯 30키로가 넘는 거리를 열심히 운전해서 혹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한다. 왠지 금요일 밤에는 수고한 나에게 조금 덜 건강해도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평소에는 애써 외면하는 음식들을 금요일 밤에는 먹는다. 이를테면 치킨이나 순대볶음, 라면 같은 것들. 그리고 여름이면 빠질 수 없는 맥주 한 잔. 금요일 밤을 위해 아껴놓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길티 프레져 같은 저녁식사를 먹고 맥주를 마신다. 요즘 일주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평일 저녁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안양천을 걷는다. 팟캐스트나 유투브를 들으며 걷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듣고 그냥 여름 소리를 들으며 걷기도 한다. 이렇게 여름 밤 안양천을 걷고 있노라면, 나라는 존재가 마치 이 공간에 툭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뭐랄까, 특별한 인과관계 없이 그냥 어디에선가 이 낯선 동네로 순간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 이 동네가 그동안 내가 살아오던 동네들과 아주 멀리 떨어진 연고가 하나도 없는 지역이라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근데 이 느낌이 쓸쓸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기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이다. 평행우주의 수 많은 가능성 중 하나의 세계를 골라서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여름이 가기 전에 더 많이 걸어야지. 이 생경한 느낌을 더 많이 느껴야지.
일단, 오늘의 회고는 여기까지.
남은 7월의 회고는 다음 주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