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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Dec 06. 2022

효율적인 삶은 왜 행복에서 멀어지는가

느리게 빵을 만들며 행복을 느끼기 

요즘 내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비효율적이다. 예전 나의 시선으로 요즘의 나를 바라보면 '너 왜 그러고 살아!'라고 이야기할 법하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충만한 느낌을 가지고 매일을 살아간다. 예전의 내가 허공 어디엔가 떠 있는 행복을 잡기 위해 바닥에 발을 못 붙이고 늘 동동거리며 사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행복이란 바로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두 발아래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동동거리지 않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고, 필요하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오랜 시간 가만히 있는다.  




효율성에 대한 강박 

나는 효율성에 중독되어 있었다. 나의 모든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대신,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시간에 점수를 매기게 만들고 늘 지금보다 더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순간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싶다는 강박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시간에도 존재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모든 시간을 무용하게 만들어 버렸지만, 정작 효율성에 대한 강박 때문에 현재에 존재하는 법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최고의 발명품이다. 나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자주 출장을 가고, 더 많은 미팅을 하면서 내가 시간을 정말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일하는 나'의 에고는 점점 커져갔고 회사는 이런 나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주듯 더 많은 연봉을 주고, 승진을 시켜주었다. 일에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고, 일과 관련 없는 대부분의 것들은 아웃소싱을 하거나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출장과 야근으로 집을 멀끔하게 유지하기 어려워지니 청소업체를 불러 청소를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끼니는 회사에서 해결했지만 가끔씩 집에서 밥을 먹어야 할 때에는 음식을 하는 것에 들이는 시간이 아까워서 15분 내로 만들 수 있는 초간단 요리를 해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일단 구매 했고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먹지도 않는 위스키를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갔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회사는 점점 커져가며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점점 관료적으로 변해갔다. 통장 잔고는 쌓이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 불안했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커져갔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행복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듯 느껴졌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효율성은 산출물을 최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산출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우리는 효율적이라 이야기한다.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경주에 실패와 실수, 장난과 재미, 그리고 창조성이 존재할 공간은 점점 사라진다. 


물건들은 분명한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은 목적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더 처절하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고 추구하며 삶의 허무함을 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인간이 목적 없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피어날 수 있다.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이야 말로 아름답고, 창조적이고,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목적 없이 존재하기 때문에 의자보다, 책상보다, 자동차보다, 로봇보다 가치 있는 존재로 피어날 수 있다. 목적이 없을 때 존재 그 자체에 의미가 깃들고 가치가 깃든다. 마치 예술이 그러하듯이 


그렇기에 목적을 추구하는 효율성과 목적 없음을 추구하는 인간성 사이에는 언제나 모순이 존재한다. 인간이 진짜 인간다워지는 순간은 효율 따위 개나 줘버리고 효율에 대한 강박 없이 그저 즐겁기 때문에, 그저 아름답기 때문에, 그저 하고 싶기 때문에 무언가를 창조하는 순간이다. 이때 우리 가슴 속 깊은 곳에 꼭꼭 싸매왔던 창조성이 깨어나고, 창조성이 깨어날 때 우리는 삶의 미스테리, 우주의 에너지, 신성과 깊이 연결된다. 




목적 없는 삶이 주는 아름다움 

나는 요즘 인생에서 처음으로 효율성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몇천원이면 사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몇 시간씩 시간을 들여 빵을 굽고 실패하고 또다시 즐겁게 빵을 굽는다. 저녁에 먹을 청국장을 끓이기 위해 아침부터 다시마를 불리며 채수를 준비한다. 그냥 재미있어서 블로그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본다. 천천히 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을 바라보고 달과 별을 바라본다. 목적 없는 대화를 하고, 목적 없이 길을 걷고, 목적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효율성이 지배하는 삶의 방식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소유적인 삶의 방식에서 존재적인 삶의 방식으로 건너간다는 것을 뜻한다. 삶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우주의 흐름에 내맡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모두 연결되어있다. 이 커다란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티끌만한 존재인지 느끼는 동시에, 광대한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만큼 커다란 나라는 존재를 동시에 느낀다.  


인간은 효율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효율성은 기계에게 줘버리고 비효율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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