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부의 규모나 사회적 지위를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필수 조건을 넘어서 무조건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은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 쉽게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노력과 성취에 스스로 도취되고 자신과 같은 성공 트랙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내가 볼 때 그들의 사유에는 크게 3가지가 결여되어있다.
첫째, 그들은 성공의 정의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성공을 원하는 이유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인데, 우리의 성격이 모두 다르듯 행복을 느끼는 개인의 감각도 모두 다르다. 내가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집에서 고요하게 차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인데, 이런 활동을 지루하거나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파인다이닝을 방문해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고, 집에서 정성스레 해 먹는 집밥을 행복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한 끼에 몇십만 원 씩하는 미슐랭에서 와인 페어링을 곁들여 먹는 비싼 음식보다 집에서 직접 신선한 야채를 조리해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소박한 식사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소박한 식사는 비교적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인 데 비해 파인다이닝의 경험에는 기회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뭐 파인다이닝만 해도 몇십만 원 정도 투자하면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이지만, 회사의 대표가 되거나 임원이 되는 것, 한강이 보이는 몇십억짜리 아파트에 살아보는 것 같은 일들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경험은 아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희소한 자원에 더 큰 가치를 두는 편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희소하고 다수에 의해 더 각광받을 때에는 자신 역시 원한다고 착각하는 인지 왜곡에 빠지기 쉽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을 이룬 후 아 이 모든 것이 다 부질없구나라고 느끼거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결말 앞에서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는 것은 앞으로 살날이 (아마도) 더 많은 우리에게 과연 진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나는 꽤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어렸을 때 회사의 임원이 되었고 꽤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경험을 통해 누구나 원하는,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원했던, 사회적 지위와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으면 자신의 신념을 신뢰하기가 어렵다. 나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사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사회적 명예나 부 같은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성공을 못 할 바에는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으려는 회피적인 방어기제인지, 진짜 참나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가치판단인지 구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 수 있다면 너무 좋으련만, 미련한 나는 때때로 직접 몸으로 부딪쳐서 깨지고 부서져야 '아, 이거 똥이었네'라고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인 건 아주 운이 좋게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위치까지 비교적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다는 점인데, 그 경험들 덕분에 나는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감각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두 번째 사유로 연결되는데, 사실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의 감각을 선사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돈이나 명예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인류의 영적 스승으로 칭송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 점을 알고 있었고 강조했다. 예수, 붓다, 노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굳이 종교가 있거나 철학을 깊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높은 에너지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 점을 실천적으로 느끼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문제나 가정 환경등에 따라서 아무리 수행을 많이 하고 많이 배운 사람도 돈과 명예에 집착하게 된다. 얼마 전 어떤 유명한(?)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학력과 돈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 때문에 이런 것이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전혀 체험하지 못하는 것 같은 뉘앙스의 말씀을 하셔서 약간 놀라기도 했는데, 나름 청빈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스님 또한 이러한 끄달림에서 자유롭기 힘든데 세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영적으로 높은 주파수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것들은 그저 수단으로 작용한다. 똑같이 월 50만 원을 쓰며 삶을 살더라도 빈곤 노인이 되어서 아주 궁핍하고 힘들게 살 수도 있고, 니어링 부부처럼 풍족하게 살 수도 있는데,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적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의 주파수는 두려움의 레벨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가난은 청빈함, 소박함보다는 빈곤과 궁핍으로 연결되어 다수의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이런 두려움의 주파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머리로는 물질이 삶의 안정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삶의 진정한 행복은 이런 것들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두려움의 레벨로 내려갔을 때에는 더 많이 축적해서 안전망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아주 조심스럽지만, 나는 이제 진정한 행복은 돈이나 물질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고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돈에 대해서도 한결 자유로워지고, 소박하고 검약한 삶을 통해 훨씬 더 큰 안정감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우리의 성공은 아주 많은 부분 우연에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일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믿든 안 믿든 이미 지구상 상위 1%에 속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누군가는 '나의' 의지력을 발휘해서 하루 80시간씩 열심히 일해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 생각은 자신의 그 의지력 또한 기질로 타고났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편협한 생각이다.
현대 심리학은 사람의 인성을 타고난 기질과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하는 성격으로 구분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뱃속 태아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되어 7살까지 유년기까지 형성된 부모나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 의해서 타고난 심리적 도식을 가지게 되는데, 이 도식은 매우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도 해서 자기가 이런 도식을 가진 채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매우 미묘한데, 이 도식은 우리가 행동하고 관계 맺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작용해서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결정해버린다. 비단 성격적인 부분뿐 아니라 우리의 외모, 체형, 장기의 건강 등 많은 부분들이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이는 삶의 많은 것들을 결정한다.
그뿐만 아니라 실로 삶은 수많은 우연의 연속이다. 우리는 언제든 길을 걷다 사고가 나서 불구가 될 수 있고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아무리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도 질병에 걸리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도 있고, 길을 걷다 강도나 괴한을 만날 가능성도 있다. 이 모든 우연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너의 삶의 결과는 모두 너의 책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삶을 매우 단편적으로 해석해버리는 좁은 시각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각자의 기준에서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고개를 조금만 더 들어서 세상을 둘러보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다 간 수많은 자기 삶의 철학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교훈을 얻는 것은 나만의 신념과 철학을 만드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을 상품화하고 판매하는 마케터가 아니라
자기 삶의 신념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아래는, 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알랭드보통 아저씨의 테드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