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에서 인내심으로
나는 조급한 편이다.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무엇이든 빨리 결과가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나의 성향은 요리를 할 때에도 잘 드러났다. 비건식을 하기 전부터도 배달 음식을 선호하지 않아서 약속이 없으면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만들어 먹었는데, 요리를 할 때의 기다림이 싫어서 15분 이상 걸리는 요리는 하지 않았다. 닭가슴살에 미리 해서 얼려놓은 밥, 엄마가 준 몇 가지 반찬이 나의 기본 식사였고, 지겹다 싶으면 오트밀과 닭가슴살을 넣은 닭가슴살 오트밀 죽을 먹거나 간단한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아주 가끔 긴 시간이 걸리는 요리를 할 때도 있었는데 기다림이 힘들어서 요리가 완성되기도 전에 지쳐버리곤 했다.
요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요리의 기다림을 즐기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빵 반죽이 부푸는 시간을 기다리고, 비건 요거트를 만들어 먹기 위해 현미를 발아시킨다. 기다림이 늘 성공을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굽는 온도를 잘 못 맞춰서 반죽을 태워 먹는 일이 다반사고, 두유에 현미를 넣어 발아시킨 요거트는 내 생각보다 더 시큼하다. 하지만 이렇게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보는 과정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고 하나의 놀이처럼 즐겁게 느껴진다.
조급함은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불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은 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않습니다.... 불안감을 피하려는 갈망은 조급함으로 끌고 가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시간이 다 지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쫓깁니다. 현대 사회에서, 당신은 정말로 이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이 온 인류를 통해 물결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전자키, 리처드 러드-
오늘 읽은 책에 나온 이 문구를 통해 내 조급함이 어디에서 기원하였는지 알아차려 본다. 나의 조급함의 보다 근원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긴 시간 동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의 시간을 헛되이 써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 두려움은 '하나의 성공상'을 가지고 있을 때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완벽한 빵'이라면 빵을 굽는 일은 하나의 불안한 과정이 된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에 빵을 만드는 긴 시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조바심을 내고 불안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그저 즐겁게 빵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라면, 그 모든 과정은 재미있는 하나의 커다란 실험이 된다. 실패해도 괜찮고, 맛이 좀 없어도 상관없다. 애당초 빵을 만드는 목적은 완벽한 빵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였으니까.
요거트도 마찬가지 이다. 처음 해보는 이 과정은 마치 과학 시간에 했던 실험처럼 재미있다. 현미가 시간이 지나 발아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 그 과정에서 보글보글 발효물이 만들어지는 것, 그 발효뮬을 넣고 시간이 지나며 액체가 굳어서 부드러운 고체가 되어가는 것을 관찰하는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실험이자 놀이가 된다. 그렇게 조급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인내심이 들어온다.
인내심은 당신의 존재가 타고난 토양입니다. 반면에 조급함은 두려움과 조건화로부터 비롯됩니다. 인내심은 신뢰에 관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삶을 신뢰한다면, 당신은 매 순간, 심지어 매우 힘든 순간에도 삶을 신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항상 흐름 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유전자키, 리처드 러드-
결과가 어떠하든 삶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모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정한 인내심이 발휘된다. 그래서 요거트의 맛이 시큼하더라도, 빵이 생각만큼 부풀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선물이었음을 알고 있으니까.
삶이 나에게 레몬을 주면, 나는 레몬에이드를 만들 거야. 라는 말처럼 삶이 나에게 시큼한 요거트를 주면, 나는 꿀을 잔뜩 넣어서 요거트 스무디를 만들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