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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Jan 04. 2023

사회와 역사적 존재로서의 '나'

요즘 개인은 사회와 역사적 맥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동시에 진정 자유로운 개인이란 자신이 처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여 이를 전복시킬 수 있는 자여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처한 사회/문화적 맥락과, 나라는 개인이 경험하고 있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맥락, 그리고 자신의 타고난 성향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무언가일 수밖에는 없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을 관찰해서 사회적으로 주입받고 세뇌당하지 않은 나의 고유한 속성을 알고, 그에 수반하는 나의 욕망과 의지를 찾는 것이 필요한데, 무엇을 주입받고 세뇌당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사회/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이 맥락은 작게는 부모와의 관계와 같은 개인의 역사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왜 이렇게 구성되었는지, 이런 사회가 만들어지기까지 인간은 지난 몇천년간 무엇을 경험해 왔는지라는 커다란 문명의 역사까지 연결될 것이다. 



사실 나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 것들이, 이렇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게 되면 이 시대에 나라는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만 하는 숙명론적인 문제로 귀결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 자신'을 탐구했을 때 나는 나의 번아웃을 단순히 조직 내에서 나와는 맞지 않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 역사적 맥락'을 모두 고려하니, 번아웃이란 끊임없는 성장과 무한 경쟁, 더 많은 소비와 자본의 축적을 이야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놓여진 개인이 자신이 가진 고유한 가치와 무비판적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모순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또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종교와 영성에 대한 공부를 해왔는데 요즘은 역사와 철학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특히 내가 관심 있게 공부하고 싶은 주제는 자본주의이다. 돈이 신이 되어버린 이 시대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한 불필요한 경쟁과 착취가 당연시되고, 잉여 자본으로 인한 불필요한 소비가 일종의 미덕과 취향으로 소비된다. 그러면서도 자본주의는 전체 파이를 키워서 모든 사람에게 결국 더 많은 것이 돌아가게 만든다는 긍정성과 자본주의만이 유일하게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진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구호로 경쟁, 착취, 소비를 애써 긍정하게 만들어 버린다. 가족에게 따듯하고 매년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하는 사업가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직원들에게 무한 경쟁을 요구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들뢰즈의 말처럼 분열증적인데, 내가 미국의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모순은 분명 정신 분열증적인 속성이 있었다. 



오늘 예도tv를 통해 들뢰즈의 사상에 대해 정말 맛보기를 봤는데, 들뢰즈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제안한 '유목민'의 개념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케팅과 소비의 키워드로 소비되는 유목민의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복시킴으로 진정한 자신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자 삶의 지향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래도 2023년 처음으로 공부하게 될 철학자는 아마도 마르크스 혹은 들뢰즈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들뢰즈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니체, 스피노자, 프로이트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데 들뢰즈부터 덥석 시작해도 알아들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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