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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Jan 05. 2023

우리는 모두 돈의 노예이다

낙타에서 사자가 되기 위한 조건 


니체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순서로 전복된다고 이야기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한 몇 년 전에 나는 내가 사자의 단계에 있다고 꽤 오만하게 생각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해외에도 다녀오고, 회사에서도 승승장구로 잘 나가고 있었으니, 사자 정도는 되지 않나? 라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낙타에서 사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넉넉한 임금을 받고, 따스한 집에서 윤택한 생활을 누린다고 노예가 노예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럼 나를 고용한 그 회사의 대표는 주인이었을까? 아니, 그 역시 노예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주인이자 신은 자본이다.


우리가 창조한 이 자본이라는 신은 더 교묘하게 우리를 복종시킨다. 노력하면 너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마음가짐을 바꾸면 된다고, 저기 성공한 사람들을 보라고 너도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이라는 신은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교묘하게 우리를 잠식시키기에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가장 큰 착취자이자 피지배자가 되어 스스로를 파괴시키고도 자신이 파괴된 줄도 모른 채 세상을 살아간다.


노예는 시스템에 의문을 품지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든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주입된 욕망에 굴복한 줄도 모른 채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며 뽐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스템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착취적인지, 정신분열증적인지 안경을 벗고 바라보니 너무나 명료하게 보인다. 문제는 이 시스템에 문제를 품는 개인은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시간을 팜으로써 생존을 위한 보수를 지급받는데, 시스템에 의심을 품는 자는 어디에서도 환영받는 노동자가 되기 어렵다. 특히나 어디에 사는지로 급지를 나누고, 초등학생들도 아파트 평수와 부모 직업을 물어보는 지경이 된 천민자본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는 더더욱.


어쩌면 나는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앞으로 나는 더 이상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서 일할 수 없게 되리라는 사실이, 더 이상 주식이나 부동산투자 등으로 얻은 불로소득이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그래서 웬만하면 보지 않으려 애써 사실을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책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고 심리를 공부하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역사를 공부하면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돈이 신이 되어버린 자본주의가 얼마나 잔인하게 인간성과 공동체를 말살시키고 있는지. 이 체제를 긍정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나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타락하게 만드는지....


귀촌을 알아보고, 집짓기를 공부하고, 가급적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그것만이 지금 이 시대에 나의 존엄과 자유를 간직하고 타인을 비롯한 생명을 최소한으로 착취하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막 빨간약을 먹은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나는 약간 현기증이 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알게 되겠지만 글쓰기는 뻔뻔해야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이렇게 써본다.)





다음 주 월요일 저녁부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부한다. 혼자서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서 수유너머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신청했다. 이 세미나는 또 어떤 안경들을 벗게 해줄까?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현기증이 공존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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