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원래 예민한 사람인가?'
"넌 어떻게 그렇게 둥글 둥글 잘 지내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해요. 어떤 사람은 대체로 명랑하고 기분이 좋고, 어떤 사람은 침착하고 조심스러운 한편, 어떤 사람은 아주 활동적이기도 하지요. 오늘은 사람마다 타고난 반응성과 자기조절의 개인차인 '기질'을 다뤄볼게요.
"기질은 성격 같은 건가요?"
엄밀히 말하면 달라요. 기질은 성격을 형성하는 뿌리 같은 거예요. 타고난 기질과 환경적 영향이 합쳐져서 성격이 되지요.
기질과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은 같아요. 하지만 기질은 영어로 temperament, 성격은 character 또는 personality라고 합니다. 기질은 유전이기 때문에 거의 변하지 않는 고정값이에요. 하지만 성격은 유전이 아니라 훈련되어 겉으로 보이는 기질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변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흔히 "너 성격 많이 바뀌었다!"라고 말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에요.
기질을 나누는 기준은 다양해요. 수많은 학자들이 기질을 분류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분류는 Alexander Thomas와 Stella Chess의 분류예요.
전체의 약 40%
특징: 신생아기에 규칙적인 일과를 보낸다. 대체로 기분이 좋고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전체의 약 10%
특징: 불규칙한 하루 일과를 보낸다. 새로운 경험의 수용이 느리게 이루어진다. 부정적이고 강렬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
전체의 약 15%
특징: 비활동적이다. 온순하고 환경적 자극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반응을 보인다. 부정적인 기분을 가지고 새로운 경험에 서서히 순응한다. 일단 받아들이면 싫증 내지 않고 꾸준히 한다.
전체의 약 35%
기질은 크게 9가지 요인들에 영향을 받아서 형성돼요. 아래 요인들을 보면서, 나는 어떤 요인들에 영향을 많이 받는지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신체를 움직이는가? 내 활동 에너지는 밖으로 향하는가, 안으로 향하는가? 외향적인 활동성이 높다면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내향적인 활동성이 높다면 앉아서 하는 만들기, 그리기 등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다.
수면, 기상, 배고픔, 배설 등 신체기능이 얼마나 규칙적인가? 규칙성이 높다면 교실의 규칙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반면 규칙성이 낮다면 사소한 규칙도 지키기 힘들어한다.
'좋아하지 않는 것'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가? 주의력이 높다면 타인의 말을 잘 기억하고 주어진 과제를 끝까지 하려고 하는 편이다. 주의력이 낮다면 흥미가 없는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다른 상상을 하거나 멍하게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것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접근성이 높으면 다양한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접근성이 낮다면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이 상대적으로 더딜 수 있다.
새로운 장소에서 자거나 먹는 것과 같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을 얼마나 잘 하는가? 적응성이 높다면 어딜 가나 낯가림이 별로 없고 친구들을 금방 사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적응성이 낮다면 새로운 장소에 갈 때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하려는 것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 지속성이 높다면 궁금한 것이 해결될 때까지 추구하는 성격을 지닌다. 반면 지속성이 낮다면 권위자의 말에 쉽게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외부 자극에 대한 내 반응의 정도가 어떠한가? 반응 강도가 높다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쉽게 흥분하고, 작은 자극에도 강한 정서적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반면 반응 강도가 낮다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감정을 꾹꾹 눌러두었다가 한꺼번에 터뜨릴 수도 있다.
외부 자극에 대한 내 민감성의 정도가 어떠한가? 반응 역치가 높다면 상대적으로 남을 잘 신경 쓰지 않고, 오감이 덜 예민하다. 반면 반응 역치가 낮다면 자다가 잘 깨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투가 조금만 달라져도 눈치를 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분위기가 어떠한가? 기분의 질이 높다면 감정과 생각이 행동과 표정으로 잘 드러난다. 반면 기분의 질이 낮다면 감정과 생각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무뚝뚝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접근성과 적응성이 높다면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가서 말을 걸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순한 기질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규칙성은 높은데 적응성이 약하다면 일과가 비교적 잘 지켜지는 사무직일 때는 순한 기질처럼 보이다가, 갑작스러운 외근이 잦은 직장에서 일한다면 힘들어하는 까다로운 기질처럼 보일 수 있겠지요.
*7번 반응 강도와 8번 반응 역치는 자폐 범주성 장애의 감각 처리 패턴과도 연결되는 지점이에요.
https://newneek.co/@lemon99/article/12280
"전 까다로운 기질 중에서도 특히 적응성이 낮은 사람이라 그런지, 사소한 일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바꿀 수 없는 걸 어떡하나요?"
기질은 바뀌지 않지만, 기질을 다루는 방법은 바뀔 수 있어요. 유아특수교육 현장에서는 '기질에 따른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양육 환경도 기질의 유지에 중요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순한 기질의 아이라도 지나치게 엄격하고 권위적인 성인이 많은 환경에 노출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은 기질과는 다르게 성장할 수 있어요. 반대로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편안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면, 탁월한 성취를 보이며 성장할 수도 있어요. 다시 말해 '기질은 못 바꾸니까 태어난 대로 살자!'가 아니라, '기질에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 주자!'인 거예요. 간단한 예시를 들어볼까요?
내가 만약 규칙성이 아주 높은 순한 기질인데,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나는 수면, 기상, 식사, 배설이 일정해야 해요. 갑자기 잠을 안 자거나, 밥을 안 먹으면 너무 힘들겠지요. 그러니 '시험을 위해 잠 안 자고 밥 굶으면서 벼락치기는 안 하도록, 미리미리 시험 공부를 해 두어야겠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
내가 만약 적응성이 아주 낮은 까다로운 기질인데,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일정이 자주 바뀌며, 안정적이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진지하게 이직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지금 당장은 버틸 만 해도, 장기적으로 나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좋거나 나쁜 기질은 없어요. 내가 타고난 기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만약 내 기질에 알맞은 양육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것 같다면, 이제부터라도 내 기질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반대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나를 돌보는 첫걸음이 될 거예요.
아래는 글과 관련된 김경일 심리학자의 강의 영상이에요. 기질과 성격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참고해 보세요.
나이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게 아니라 사회 능력이 바뀐다? | 김경일 인지심리학자 [#어쩌다어른]
https://www.youtube.com/watch?v=IYkYUY3NhW0
2024년 10월 20일 뉴닉(NEWNEEK)에 기고한 글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https://newneek.co/@lemon99/article/13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