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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 장애 형이 있는 비장애형제자매 하늘이 이야기

'내 형제자매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by 레몬자몽

"형은 가끔 좀 이상할 때가 있어요."


"그래? 언제 이상한데?"


"몰라요. 놀 때도 좀 뭔가 이상하고, 갑자기 화낼 때도 있고, 울 때도 있어요."


"하늘이 생각에는 형이 왜 그런 것 같아?"


"음… 잘 모르겠어요."


"형이 왜 그러는지, 엄마나 아빠가 설명해 주신 적 있니?"


"…아니요."


"엄마나 아빠한테 물어본 적 있니?"


"…아니요."




지난 글에서, 비장애 자녀에게는 어릴 때부터 형제자매의 ‘장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비장애 자녀는 이미 일찍부터 형제자매의 ‘다름’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에요. 오늘 글은 제가 유아특수교사로서 일하면서 만났던 또 다른 비장애형제자매 어린이와의 대화예요. 이 대화를 보면,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얼마나 일찍부터 형제자매의 ‘다름’을 인지하는지,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해서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고 애쓰는지, 그래서 왜 이 아이들에게 형제자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지 알 수 있어요.




미술 시간.

'우리 가족'을 그리는데, 하늘이가 형을 빼고 그렸다.


"하늘아, 형은 어디에 있어?"


"형은 없어요. 형은 좀 별로예요."


"왜 별로야?"


"어떨 때는 자꾸 울어요. 진짜 계속 울어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하늘아, 선생님이 어떤 사람들은 참거나 기다리는 걸 배우기 위해서,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했던 거 기억나?"


"네."


"선생님 생각에는 형도 그런 것 같아. 하늘이가 형을 조금 더 기다려 줄 수 있겠니?"


"네."




자유놀이 시간.

오늘은 하늘이의 단짝 친구가 등원하지 않았다.

하늘이가 혼자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길래, 슬쩍 다가가 물어본다.


"하늘아, 요즘 형이랑 집에서 잘 지내?"


"네. 잘 지내요."


"형도 잘 있어?"


"근데 형은 가끔 좀 이상할 때가 있어요."


"그래? 언제 이상한데?"


"음… 갑자기 막 로봇 댄스를 계속 출 때 있어요. 똑같은 로봇 댄스를 계속 춰요. 그런데 그건 그냥 로봇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관심이 많으니까요."


"또 다른 때는?"


"제가 줄 같은 걸 갖고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걸 막 잡아당겨서 싸웠어요. 아빠가 형한테 기회를 한 번 준다고 했어요. 다음엔 버려 버린다고 했어요."


"하늘이는 형이 그럴 때 기분이 어때?"


"좀 별로예요. 근데 엄마가 자고 있을 때는 말 안 해요. 형이 가끔 제 거 뺏어 가거나 해도 얘기 안 해요."


"선생님은 화나고 속상해서 막 이를 것 같은데."


"전 화 안 나요. 안 속상해요."


"…그렇구나. 그런데 하늘아, 화나도 괜찮아. 속상하다고 말해도 돼. 알겠지?"


"…네."


"그럼 엄마가 깨어 계실 때는? 엄마한테 말해 본 적 있어?"


"음… 네. 근데 엄마는 형 좀 이해해 주라고 해요. 양보해 주라고."


"그렇구나. 하늘아, 엄마한테 ‘나도 속상해요.’ 이렇게 말해도 돼. 하늘이도 형이 하늘이 거 빼앗아 가면 속상하잖아, 그렇지? 다음에는 꼭 그렇게 말해보자."


"알겠어요."




하늘이의 형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 내가 담임으로 만났던 아이이기도 하다. 하늘이가 형의 어떤 부분이 '이상하다'고 말하는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자폐성 장애 유아들의 특징인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흥미 패턴'으로 인해 나타나는 독특한 행동(똑같은 로봇 댄스 계속 추기), '사회적 상호작용 및 의사소통의 결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놀잇감을 갑작스럽게 빼앗는 행동을, 6살 어린이가 이해하기 쉬울 리가 없다.


하늘이의 마음속에 궁금증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일부러 하늘이에게 형 이야기를 물어본다. 먼저 하늘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하늘이의 마음을 읽어 준다. 그리고 하늘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형의 행동을 설명해 준다. 짧은 시간이라도 이렇게 해 주는 게, 하늘이가 건강한 정서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많은 유아기 비장애형제자매들은 또래보다 성숙하고, 이타적인 기질이 강한 것처럼 보여요. '애어른 같다'는 말을 많이 듣지요. 유치원에서는 무탈하게 잘 지내니 이름 불릴 일도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이 아이들의 깊은 무의식에는 이미, '우리 집에는 이미 힘든 문제가 하나 있어. 그러니까 나는 이 집안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깔려 있어요. 그래서 형제자매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생겨도 '괜찮은 척', 즉 회피적 대처를 하게 돼요.


하늘이가 놀잇감을 빼앗겨도 "전 화 안 나요. 안 속상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감정 자체를 부정(denial)하는 방어 기제를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오히려 실제 감정과는 반대로, 괜찮은 척 웃는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의 방어 기제를 내보일 수도 있어요. 6살 어린이가 놀잇감을 빼앗겼는데, 어떻게 화가 나지 않고 속상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 감정을 회피하고, 괜찮은 척을 하는 게 6살 어린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각해 낸 가장 좋은 방법인 거지요.


그래서 비장애 자녀들에게는 이른 시기부터 형제자매의 장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요. 그리고 형제자매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생겼을 때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수용해 주고, 그 감정에 대한 설명을 해 줄 사람도 필요해요. 그 역할을 바로 엄마, 아빠 같은 보호자들이 해 주어야 해요.




오늘은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어린 시기부터 형제자매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정서를 가지게 되는지, 그래서 형제자매에 대한 설명이 왜 이른 시기부터 필요한지를 다뤄 보았어요. 하지만 많은 보호자 분들은 "선생님, 그래서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하나요? 저도 이해하기 어려운 걸, 아이한테는 뭐라고 설명을 하지요?"라고 물으세요. 다음 주에는, '비장애 자녀에게 장애 설명하기'를 주제로 조금 더 심화된 내용을 들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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