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비장애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오늘은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을 글로 짧게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어릴 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장애 형제자매를 둔 나 같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정 환경에서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러다 동생의 영향으로 특수교육과에 가게 되었고, 특수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장애 유아뿐만 아니라 그 형제자매들도 자주 만났다. 그리고 많은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여전히 정서적 결핍을 가지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내가 어릴 때보다 조금은 더 많은 지원 방안들이 생겨났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교사 생활 2년차에 바로 결심했다.
'이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탄탄한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프로그램 연구를 위해서 대학원에 가야겠다.'
그런데 웬걸, 일반대학원 진학을 위한 연수휴직은 교사 경력 3년차부터 가능하댄다.
그래서 올해까지 근무 연한을 채우고, 휴직하고 내년에는 대학원에 간다. 유아기 비장애형제자매들 지원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왜 비장애형제자매들을 유아기 때부터 지원해야 할까?
이들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도, 경제적 관점에서도 모두 훌륭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관점을 먼저 보자.
이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형제자매의 장애로 인해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 포용 능력 등이 월등하다. (당연히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매순간 가정에서 이런 능력을 배울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느 조직을 들어가든, 이해심이 깊고 협력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인성적 태도'는 어떤 일을 하든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가치이다.
경제적 관점으로는 어떨까?
비장애형제자매들은 어릴 때부터 '내 형제자매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내가 더 잘해야 한다', '내가 두 사람 몫을 해야 한다', '내가 더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강한 동기와 책임감을 가진 아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된다.
하지만 많은 비장애형제자매들은 형제자매의 장애로 인해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지지와 관심, 안정을 받지 못한다. (그건 부모 잘못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서 잘 자라는 것 같아도 마음에 구멍이 있는 채로 성장하거나, 오히려 엇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온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적절한 기능을 하도록 만드는 데에 사회적 비용이 더 든다. 이런 정서적 결핍을 어릴 때부터 채워준다면, 비장애형제자매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심리적 동기와 결부되어 더 훌륭한 사회적 자원이 될 수 있다.
또한 비장애형제자매들은 진로 선택에서 가족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높은 비율로 특수교사나 사회복지사, 치료사 등 '장애 돌봄'과 관련된 직군에 종사하게 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전문가의 개별화된 지원을 받는다면, 비장애형제자매들이 특수교육, 사회 복지, 치료 분야 이외에도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영역이 많을 것이다. 물론 이 분야들이 결코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나부터가 특수교육 분야의 종사자이기도 하니까. 가족의 영향을 조금 덜 받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게 되는 비장애형제자매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핵심은 '어릴 때'부터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뻔하다. 뭐든 조기교육이 효과가 더 좋기 때문이다. 영어도, 악기도, 체육도 다 어릴 때부터 시켜야 잘한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일은 더 그렇다. 한번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구멍은 점점 커지고 막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성장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내 다른 글을 참고하면 좋겠다.
https://newneek.co/@lemon99/article/275
물론 이는 개인별, 가족별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비장애형제자매들의 자조 모임을 뜻하는 'Sibshop(Siblings Workshop)'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자조 모임을 넘어서서, 유아기의 비장애형제자매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도입되면 좋겠다. 언젠가는. 그 초석을 세우기 위한 내년이 아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