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특수교사로 일하며 겪은 재미있는 일들

엉뚱발랄해서 웃음이 나게 하는 어린이들 이야기

by 레몬자몽

※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오늘 글은 유아특수교사로 일하며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다. 여느 직장이 그렇듯, 힘든 일도 있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곳이다 보니, 어른들만 있는 직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엉뚱발랄한 일들이 종종 있다. 그 중 두 가지만 풀어 본다.




달님이는 종교와 역사를 아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자폐 어린이들의 '좋아한다'는 다른 사람들의 '좋아한다'는 표현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느 정도냐면, 도서관에서 종교나 역사를 연상시키는 표지의 그림책을 발견하면, 그 책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보기 전에는 절대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책을 덮으려고 하면 발버둥을 치고 난리가 나는 정도였다.


등하원하는 문 앞에 놓인 토끼 피규어가, 달님이에게는 '계백장군'이었다.

등하원할 때마다 한 번씩(다행히도 매일은 아니었다) 그 토끼 피규어를 붙잡고 "계백장군!"이라고 외치며 교실로 들어오지를 않았다. 어떤 날은 신발장에서 교실로 전환을 하기까지 10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결국 나는 달님이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계백장군의 위치를 옮겼다.


내가 빨간 가디건을 입고 출근한 날, 달님이가 날 보고 소리쳤다.

"세종대왕님!"

집에서도 "세종대왕 학교 가자."라고 말한다고 했다.

통합학급 선생님이 노란 가디건을 입고 온 날, 통합학급 선생님은 '신사임당'이 되었다.

세종대왕과 신사임당이 운영하는 교실 안에서 부디 많은 배움이 있었기를 바란다.


달님이는 편식이 심했다. 여느 어린이처럼 튀김, 고기, 디저트는 좋아했지만, 샐러드나 김치는 좋아하지 않았다.

먹기 싫은 반찬을 한 번 먹어보도록 권유하면, 달님이는 온갖 신들을 찾았다.

"예수님! 부처님! 하나님!"

먹기 싫다는 강력한 의사 표시였다.

감사하게도 같은 테이블에 앉는 다른 어린이를 보고, 달님이는 골고루 먹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친구의 놀잇감을 빼앗는 바람에 나와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달님아, 친구 놀잇감 빼앗으면 안 돼. 그건 놀이할 때의 규칙이야."

그러면 달님이는 혼자 조용히 읊었다.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불경을 외는 모습에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 나와서 도저히 훈육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달님이와 함께한 하루하루는 매일이 기상천외한 기록이었다. 비록 달님이의 졸업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로봇을 대단히 좋아하던 꽃님이도 있었다. 로봇을 너무 좋아해서, 주말마다 부모님과 미니 로봇 쇼를 하는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로봇 쇼를 보고 왔다.


꽃님이의 '로봇 댄스'를 보는 게 내 낙이었던 해가 있다.

"꽃님아, 로봇 댄스 보여 주세요!"

꽃님이가 내 요청에 응할 때도, 응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기분이 좋으면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교실 한복판에서 로봇 댄스를 춰 주었다.

별로 춤을 출 기분이 아니면, 로봇처럼 "지금은. 로봇. 댄스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내가 "왜요? 재생해 주세요! 재생! 재생!"하면 마지못해 춰 주었다.

로봇 산업 발전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 꽃님이가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 웃음이 난다.


꽃님이는 웅웅거리는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꽃님이는 강당에서 공연 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조금 크다'고 느껴지는 공연 소리가, 꽃님이에게는 굉음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하루는 강당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어린이들이 모두 줄을 섰다. 다른 어린이들이 줄을 잘 섰는지 신경 쓰다 문득 둘러보니, 꽃님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교실 한가운데에 일자로 가만히 누워 있는 꽃님이를 발견했다.

"꽃님아, 누워서 뭐해?"

내 질문에 꽃님이는 천장을 응시하며 로봇처럼 대답했다.

"삐리삐리삐리. 충전이. 필요합니다. 충전이. 필요합니다."

어지간히 강당에 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러 번 연습한 결과, 꽃님이는 귀를 막지 않고서도 공연을 잘 볼 만큼 커서 졸업했다.




이 세상 만사는 다 명암이 있다. 어느 면을 더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가는 내 선택이다. 특수교사로 일하며 고단하고 넌더리 나는 일도 많았다. 전부 어른들을 대하며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나에게 남겨준 좋은 기억만 가지고 대학원에 가려고 한다.


*대표 이미지 출처: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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