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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몽드 Jul 31. 2022

01. 범일역 7번 출구

그에게서 코튼향이 났다.

10년 만이다. 다신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벽에 낀 푸른 이끼 그리고 달큰한 코튼향.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


10년 전. ‘헤어살롱’은 아주 어둡고 깊숙한 곳에 있었다.


오전 6시 10분 서울역. 퀭한 눈에 억지로 힘을 싣고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괴성을 지르며 들어서는 기차. 돌덩이 같은 다리를 중력에 반하고 들어선 곳은 쿱쿱한 냄새 가득한 28,600원 짜리 무궁화호 기차였다.


KTX의 절반 가격, 소요 시간 2배. 신이 자비를 베풀어 그나마 인간에게 공평하게 나눠준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했건만. 이마저도 ‘있는 자’들은 돈으로 시간을 샀다. 


‘KTX 59,800원.’

하지만 밀린 잠을 2배 더 잘 수 있다는 모종의 자위를 하니 어느새 부산역에 다다랐다.


장장 5시간의 여정. 23시간의 공복이었지만 뱃골의 공허함보다 더 심한 갈증이 나를 ‘헤어살롱’으로 이끌었으니. 발걸음을 재촉했다. 멈출 수 없었다.



지하철 주황색 라인을 타고 범일역에 내렸다. 7번 출구로 나가니 왼편에 우뚝 서 있는 현대백화점. 크리스마스 전구를 온몸에 두른 신식 건물이었다.


‘Happy 2022 Christmas'.


나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함을 뒤로하고 백화점을 왼쪽에 끼고 2분 정도 걸어가니 풍경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허물어져가는 판잣집과 이끼인지 곰팡이인지 모를 검푸른색 얼룩들.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지는 하수구 냄새와 함께 “영화 <친구> 촬영지입니다”라는 팻말이 놓인 작은 육교가 눈앞에 보였다. 여기였다. ‘헤어살롱’이 있는 곳.


‘헤어살롱’의 존재를 알려준 자는 내게 말했다.

‘두려움을 안고 문을 열어라. 그곳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다.’


‘헤어살롱’의 문을 열자 백화점 명품관에서 날 듯 한 코튼향이 나를 덮쳤다. 구석구석 곰팡이가 핀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시선을 돌리니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에트로 가운을 입은 50대 여자가 의자에 앉아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한가하게 머리나 다듬기 위함이 아니었다. 세상은 어느새 경험의 상향평준화가 되어 있었다. 내가 전역했을 때, 그러니까 4년 전인 2017년. 대학 동기들은 배낭여행은 기본, 국토대장정과 해외 봉사활동까지 다녀왔다. 마치 패키지 상품인 것처럼.


이 경험들이 점점 디폴트 값이 되었을 때, 사회는 더 ‘특이한’ 경험의 상향평준화로 가고 있었다. 히말라야 등정, 30만 원으로 세계일주 등 더 색다른, 더 극한의 경험에만 ‘경험’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가치 있다 여겨졌다. 나머지 것들은 남들에게 TMI가 되는 그저 추억 정도. 그래서 나는 경험을 사기로 했다.


경험을 판다는 여자.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니 얼마 정도 들고 왔는데?”


초짜로 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 했다. 수중엔 15만 원이 있었고 토익학원, 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어머니에게 15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었다. 당당하게 165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특이한 경험을 달라고 했다. 큰돈이었다.


“소문 듣고 왔겠지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거 없는 거 알제? 그래도 니랑 딱 어울리는 게 하나 있긴 한데, 보기나 할래?”


그녀는 손이 많이 탄 공책을 건넸다. <경험 수위 : 3등급>이라고 되어 있는 책을 펼치니 구매욕구가 오르는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 S1. ‘나’의 집

지루한 일상에 지친 ‘나(구매자)’는 삶을 뒤바꿀 여행을 계획한다.


# S2. 인천공항

이틀 뒤, 50L짜리 가방 하나만 매고 아마존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탄다.

.

.

.

# S5. 풀이 무성한 아마존

‘나(구매자)’는 아마존 마지막 원시부족인 히랄라야 족에게 쫓긴다. 가방은 버린 지 오래고, 신발 한 짝은 벗겨지기 일보 직전이다. 체감상 10km는 뛴 것 같다. (중략) 우연히 모터 배를 탄 여행객을 보았고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사야 했다. 아니, 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효용과 효율이었다. 나에겐 당장 아마존에 갈 수 있는 시간, 돈 그리고 용기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원주민에게 쫓기는 이야기라니. 지금까지 들어본 경험 중 희소성 최상이었다.


그 뒤엔 어떻게 되었냐고? 그 여자는 나를 어두운 방으로 집어넣고는 비디오를 틀고 나갔다. 내가 읽은 시나리오가 영상으로 나왔고. 모르겠다. 어느 순간 영상의 주인공이 나였다. 영상이 끝난 후에는 정말 10km를 뛴 듯 땀이 흐르고 있었고 신발 한 짝이 없었다. 단 한 가지 정확히 기억나는 건 헤어살롱의 코튼향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음 해, 우리나라 유수 기업인 삼전 기업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엔 회사에선 ‘아마존 맨’이라 불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원 당시 스펙과 학벌은 지원자 중 중하위권이었지만 도전정신과 용기 그리고 추진력이 높게 평가되어 신입사원 중 2등으로 입사했다고 한다. 단지 ‘아마존’, 그 경험 하나만으로 말이다.


친구와 후배들 사이에선 ‘삼전맨’이라 불렸다. 합격 팁을 물어보는 연락이 입사 후 3년 간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에게 팁을 줄 수 없었다. 나에게 진짜 팁은 ‘헤어살롱’이었기에. 그들에게 말할 순 없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헤어살롱’의 코튼 향이 나에게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10년 차 삼전맨이 되었다. 헤어살롱의 코튼향은 시간에 깎여 희미해졌고 소위 삼전맨의 품위에 맞는 조말론 향수가 나를 덮었다.


*


오전 7시 50분. 오늘도 여느 때처럼 향수병을 손에 들었지만 오늘 있을 신입사원 면접의 면접관으로 참여해야 했기에 병을 내려놓았다. 그들의 집중력을 속세의 향기로 흩트리고 싶지 않았다. 지원자로 보이는 이들과 함께 회사 로비로 들어서니 10년 전 면접이 떠올랐다.


시작된 면접. 첫 번째 지원자가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전략사업부에 지원한 삼전의 미래! Q입니다.”


포트폴리오를 보니 면접 전 부장님이 극찬한 지원자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디서 이런 인재가 나왔냐며. 가히 청춘이라면 이런 경험쯤은 해보지 않아야 하냐며. 요즘 애들은 이런 패기가 없다며 말이다. 나는 Q의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Q 포트폴리오>

과학저널 <대학생 시절 스페이스X와 협업 제안, 화성 여행을 한 아시안 Q를 인터뷰하다> 2030.06.11


인사팀장은 눈을 번쩍이며 질문을 해댔다.


“일론 머스크랑 협업하면서 힘든 건 없었나요?”

“외계인을 봤나요?”


실없는 질문에도 술술, 막힘없이 답변하는 능구렁이 같은 Q. 하지만 나는 Q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Q에게서 잊고 지낸 진한 코튼향이 났기 때문이다.


*


2032년. 10년 만이다. 다신 이곳에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범일역, 곰팡이 그리고 육교.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일상과 작은 경험 그리고 각자의 속도에 맞춰 삶의 가치를 배우는 것이 아닌, 희소성 있는 경험과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끼워 맞춰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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