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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몽드 Jul 24. 2023

13. 마주치는 눈빛이

그땐 그랬지

설렘의 대명사

조금은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때는 2017년, KBS <뮤직뱅크 월드투어> 작가로 재직할 때 일어난 일이다. 120여 명의 스태프 중 막내로 기획제작에 참여했다. 개최지는 싱가포르. 해외에 간다는 설렘보다는 턱없이 부족한 스태프로 인한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1만 5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장에 들어서니 더 실감됐다.


'이거 가능한가...?'


하지만 구원자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당시 현지 코디가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어-영어가 가능한 스태프를 10명쯤 고용한 상태였다. 막내 작가인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공연 준비에 돌입했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선배 작가와 컬래버레이션 무대에 쓰일 소품을 정해야 했다. 남녀 듀엣곡이었기에 간질거리는 분위기를 극대화하려면 어떤 소품을 놓으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스툴 의자와 긴 나무 벤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선배는 나에게 '저 친구랑 시뮬레이션해 봐'라며 우리 곁에 서있는 한 사람을 불렀다.


그는 현지 스태프 중 하나였다. 남자였고. 


그 외의 정보는 습득하지 못했다. 막내 작가이지만 팀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선배의 말에 극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실제 무대 구성대로 나와 남자 스태프는 벤치 양 끝에 등을 마주 보고 앉았다. 그리고 전주가 끝나갈 무렵, 마이크를 들고 있는 것 마냥 주먹을 입 가까이에 대고 몸을 돌려 서로를 봤다.


그때.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찌릿.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때 그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뿔테안경, 서늘한 인상, 시원하게 위로 올린 검정 머리칼. 뭔가 간지러웠다. 민망했고. 이를 선배 작가도 느꼈는지, '너네 뭐야?'라는 눈빛으로 우릴 쳐다봤다. 결국 우리가 눈빛을 나눴던 벤치가 실제 무대에 올라가기로 그 자리에서 결정됐다.


그러고 우린 얼마간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현장이 바쁘기도 했고 뭔가 어색한 기류가 느껴졌다. 단언컨대 그는 전혀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1초간 눈을 마주치고 웃은 그 기억이 강렬했나 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와 개인적인 연락을 나눴다. 그때의 나는 연애 LV.1이었기에 그가 시그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 또한 커질 가능성이 다분한 관심이 있었지만 다음 편 제작에 돌입해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시그널은 끊어졌다.


찰나의 순간 피어오른 감정.

지금 생각해 보면 순수했고,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리고, 미소가 난다.


자니...?

잘... 지내지...☆★


여기서 나마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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