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
닭이 사라졌다.
일주일 전, 전국의 양계장으로부터 신고 전화가 빗발쳤다. 닭이 알을 낳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전국적으로 17만 마리의 암탉이 산란을 멈췄다. 정부는 코로나, 조류인플루엔자 등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악성 바이러스는 없었다.
이틀 뒤, 원인은 전국닭조합의 파업으로 밝혀졌다. 치킨 판매에 문제가 생긴 대한치킨프렌차이즈협회 대표는 닭훈련사 조형욱을 양계장 포천 지부로 보냈다. 전국닭조합의 위원장닭이 있는 곳이었다.
현장은 처참했다.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양계장은 꼬끼오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조 훈련사는 양계장 깊숙한 곳, 빨간 벼슬을 틀고 있는 포천 지부닭에게 다가가 파업 이유를 물었다.
“꼬-꼬오오 꼬꼬댁 꼬오- 끼오”
지부닭은 볏대를 세우며 소리쳤고 조 훈련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훈련사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포천지부닭의 말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는 울대를 가다듬었다.
“대한치킨프렌차이즈협회는 당장 <치킨 신격화 금지법>을 발의하랅↗︎! 인간은 ‘치느님, 치킨은 살 안쪄, 치킨은 항상 옳다’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신의 프레임을 씌웠닭. 그리고 자연스레 치킨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2만원이 되어 버렸닭!! 우리는 신이 아니닭. 서민의 친구다앍!!! 라고 합니다.”
조 훈련사가 덧붙이기를 200년 전, 한 인간 머슴이 눈을 다친 그들의 조상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이 있었던 것. 그때부터 닭은 영양이 부족한 서민들을 위해 열심히 개체수를 늘려왔다는 것이다.
“조상들 말에 의하면, 그 머슴 님의 정성을 생각하면 날개를 펼쳐 독수리처럼 상공을 훨훨 날 수 있을 정도로 황홀한 일이었닭. 우리는 은혜를 잊지 않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 너희들이 단백질 부족에 시달릴 때 우리를 희생하면서까지 영양을 채워줬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팔팔 끓는 기름에 한번 들어갔다 오기만 하면 서민들에게 그야말로 만원의 행복이었지 않냙!! 퇴근 후에 일을 마친 아버지들이 누런 봉투에 우리를 부담없이 한 마리씩 담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개체수를 늘려왔단 말이닭! 하지만 어느 순간 튀김옷 입은 우리의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2만원, 3만원이 되어 버렸다앍!!”
그리고는 조훈련사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포천지부닭이 소리쳤다.
“꼬오오ㅗ고고옥오고꼬옥!!”
기자들은 조 훈련사에게 당장 통역해달라고 소리쳤다. 조 훈련사는 차분하게 전했다.
“200년 간 우리 닭세계의 캐치프레이즈는 ‘치킨은 서민이다’였닭. 우리는 지금 스스로 대를 끊은 것이닭. 당장 <치킨 신격화 금지법>을 발의하라앍!! 아니면 우린 사라질 것이닭!!”
그리고 다음날, <치킨 신격화 금지법>이 발의되었다. 법안의 큰 골자는 누구든 치킨을 올려치기하며 신의 프레임에 가두면 벌금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포천 지부닭은 그제서야 전국의 지부닭에게 알을 낳을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닭들의 바람대로 치킨 값은 10,000원까지 하락했다.
그리고 다음날, 영화 <기생충> 배우들이 영화에서와 같은 꾀죄죄한 분장을 하고 치킨을 뜯는 광고가 나왔다. 해당 광고가 나간 후 대한치킨프렌차이즈협회 대표가 말했다.
“반지하에 사는 우리네 같은 사람들이 치킨을 먹는 모습을 보며주며 ‘치킨은 서민이다’라는 닭들의 이념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한달 후, 치킨 가격은 40,000원까지 올랐다. 대표는 아카데미 수상작 배우가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며 변명했다.
이 사실을 안 포천 지부닭은 사람들 앞에 섰다.
“꼬오오꼬끼오끼오 꼬끼오댁댁!!!”
조 훈련사가 이를 통역하기를,
“시장은 서민을 버렸닭. 우리는 더 이상 서민들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앍”
포천지부닭은 서민들에게 미안하다며 울부짖었다. 울대가 쓰나미 속 파도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경고한다. 치킨 다음은 라면이 될 것이닭!!!
전국의 닭들이 서민 곁을 떠났다.
닭이 사라졌다.
*
20년 후, 2040년.
20년 전 협회 해산과 함께 직위를 잃은 전 대한치킨협회 대표에게 손자가 다가와 말했다.
“할아버지, 나 만 원 만요!”
- 옛다! 울 손주 만원은 어따 쓰려고?
“학교 마치고 진라면 사먹게요.”
- 에이, 진라면 하나가 만 오백원인데 그럼 쓰나. 여기 500원도 가져가라.
서민의 친구, 라면이 사라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