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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몽드 Aug 09. 2022

04. 십일(11)

삶은 연속이다.

이건 마약이 아니다. 그저 현실을 잠깐 잊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를 ‘십일(11)’이라 부르지만 의미는 없다. 대마초를 떨이나 빵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일시정지(┃┃) 모양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뭐, 정확하진 않다. 10분 뒤에 만나기로 한 브로커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왠지 알려주지 않을 것 같다.


십일(11)은 삼키는 약도, 뿌리는 스프레이도 아니다. 똑딱이 버튼이다. 고로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대신 브로커와 약속한 날짜, 시간, 초 하나 틀리지 않은 그때 버튼을 눌러야 한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세상이 멈춘다. 마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말이다. 브로커 말에 따르면 버튼을 누른 사이 세상이 나를 잠깐 잊는단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나는 코마상태가 되는, 하지만 사회는 나의 존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약속한 시간이 끝나면 사회는 다시 나를 기억하고 자연스레 사회에 녹아드는. 약간은 무서운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십일(11)을 사야겠다고 생각한 건 3일 전이다.


“정대리, 오전에 말한 K그룹 제안서 내일까지 완성. 알지 내 스타일? 스피드하게”


김 과장의 목소리에, 탁-. 번아웃이 왔다. 눈앞이 흐려졌고 누군가 기력을 훔쳐간 듯 몸에 힘이 빠졌다. 사무실이 떠나가라 목놓아 울고 싶은 걸 참고 화장실로 갔다. 최근 6개월 새 3일에 한번 찾아오는 증상이지만 적응하긴 어려웠다. 변기에 앉아 심호흡을 해도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었다.


그날 모든 끼니를 거르고 새벽 4시까지 제안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새벽 4시 11분, 필사적으로 수소문한 끝에 십일(11)을 파는 브로커의 텔레그램을 알아냈다. 인생에서 48시간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두려웠지만, 이렇게 죽어 평생을 잃는 것보단 48시간을 잃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단 한번 만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그에게 일시정지 버튼 하나를 주문했고, 바로 오늘이 그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우린 여의도 한강 공원에서 만났다. 그는 영화에서 보던 여느 브로커처럼 검정색 모자, 검정색 후드티 그리고 색 바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림자가 드리운 모자 창 아래에서도 그의 눈은 선하다 못해 반짝였다. 그는 반지 하나 겨우 들어갈 종이 상자를 건넸고 집으로 돌아온 나의 48시간이 사라졌다.


48시간 후. 깨어보니 정신이 맑았다. 뇌를 갈아끼운 것만 같았다.


“정대리, 무슨 좋은 일 있나? 오늘 소주 한잔할까?”


인상 좀 펴라고 노래를 부르던 김 과장은 혈색이 좋아졌다며 일을 더 시켜야겠다는 날카로운 농담을 해댔다. 그날도 어김없이 끼니를 거른 채 새벽 2시에 퇴근을 했고, 한 달 뒤 또다시 탁-하고 눈앞이 흐려졌다.


땅으로 꺼질 듯 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오는 길. 내 인생에 십일(11)은 단 한번만이었다는 다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몸은 점점 더 강한 피로를 원하는 듯 했다. 그래야 잠에 들 수 있게 해준다고. 정적이 싫어 TV를 켰다.


“2025년 5월 1일 OECD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번아웃 증후군 인구수 1위국입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번아웃증후군에 잇따르는 자살, 무기력증을 겪는 국민을 위해 상담센터를 구축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장관보다 눈에 띄는 건 브라운관 모서리에 걸친 한 사람이었다. 보좌관처럼 보이는 그. 선하다 못해 반짝이는 눈. 검정색 모자, 검정색 후드티 그리고 빛 바랜 청바지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그. 카메라의 강렬한 플래시에도 그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았다.


냉동고에 넣어둔 맥주 한 캔을 들고와 텔레그램을 켰다.


<내일 당장 3개 가능한가요>


브라운관 속 눈이 선한 그가 갑자기 화면에서 사라졌고. 텔레그램이 울렸다.


<가능합니다. 내일 20시 여의도 한강공원>


다음 날 공원에서 만난 건 브라운관 속 그였다. 그는 작은 상자를 건네고 말없이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버튼 세 개를 동시에 눌렀고 그렇게 나의 216시간이 사라졌다.


“정 대리, 이번 G그룹 제안서 아주 맘에 쏙 들어.”


내가 십입(11)을 즐긴 사이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일을 진행해놨다. 그날도 새벽 2시에 퇴근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일 년 뒤, 10년 뒤에도 나는 십일(11)을 눌렀다. 그렇게 나는 죽지 않고 버텼다.


“2035년,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번아웃 증후군 인구수 최하위권에 진입했습니다.”


내가 십일(11)을 처음한지 딱 10년이 되는 날. 눈이 선한 그자는 여전히 브라운관 모서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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