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하여
“학생은 왜 글 쓰는 쪽으로 가지 않고 그쪽으로 갔어요?”
대학교 1학년 글쓰기 교양 교수님의 질문이었다. 한 편의 독서 평론과 한 편의 영화 감상문을 최종 과제로 제출한 뒤 첨삭을 기다리던 중 급작스럽게 받은 질문이었다. 글로 밥 먹고 살 자신이 없어서요. 이 정도로 솔직하게 대답했던 것은 아니지만 뉘앙스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수님은 바람 빠진 듯한 웃음소리를 내셨다. 공감이 어느 정도 비율로 섞인 톤이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장장 12년이 되는 학창 시절 내내 취미와 특기에 모두 글쓰기를 적어냈던, 백일장에 나가면 늘 상 하나씩은 받아 돌아왔던, 그래서 작문에 대한 나름의 자긍심과 나름의 ‘조’가 있었던 나의 교만하기 짝이 없는 부끄러운 고백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7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오랜 시간 글을 쓰셨고, 그 때문인지 집에는 늘 빨갛고 큼지막한 모눈으로 가득한 원고지가 여기저기에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검정 하드커버에 단정하게 엮인 원고지 묶음인데, 괜히 마음에 들어 몰래 내 책꽂이에 꽂아두었고 이내 내 습작 노트가 되었다. 퍽 의협심에 불타 써 내려갔던 논설 조의 글도 있었고, 어린 상상력에 끄적였던 소설도 있었고, 언제나 제일 자신 없는 시도 있었다. 그것은 내 첫 ‘낭만 상자’였다.
나는 낭만을 사랑했다. 언제나 그것은 내 큰 동력 중 하나였다. 글짓기를 아무리 좋아한 들, 쓰기 싫은 주제는 쓰기 싫었다. 그래서 일기도 독후감도 그렇게나 지루해서 언제나 미루고 미루다가 엉망으로 써서 내곤 했다. 그 베짱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기른 것은 성실보다는 충동이었다. 그러니 글은 내게 업보다는 놀이 같은 것이었고, 현실보다는 꿈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그 낭만 게이지가 EMPTY를 향해 내달렸던 게 언제더라. 내 삶에서 현실이 낭만보다 커졌던 순간부터일 테다. 꿈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해진 시점부터 그렇게도 가슴 설렜던 일들에 더 이상 크게 마음이 뛰지 않았다. 그 이상의 것들이 상상되지 않았다. 좋은 글감을 봐도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위기감을 느껴 노트북 앞에 앉아 흰 화면 위로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보며 느꼈던 좌절감이 여전히 사무친다.
철이 조금 드니 낭만을 잃었고, 그렇게 약간 모자란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새삼 오만했던 나를 마주했다. 그다음에는 어땠더라. 조금 겁이 났던 것 같다. 글을 쓰기에 연륜이 없고, 글을 쓰기에 경험이 없고, 글을 쓰기에 성실하지 못한 내가 먼저 보여서. 그러니 선뜻 문장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말보다 글이 익숙한 사람이다. 글쓰기는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당장에 드는 생각을 직접 내뱉는 것보다 내가 던지는 이 말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곱씹어 볼 시간이 내게는 필요하니까. 세상에 미움받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유난히도 남의 구설을 신경 쓰던 내게는 성긴 체라도 한 번 거를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이 ‘놀이’이고 ‘즐거움’이었던 그때와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이다음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어느 평범한 날 문득 남편이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이렇게 마치 습관처럼 말하면서도 스스로 놀랐다.
이제 와서 내가 무슨 수로 어떤 글을? 상상하고 꿈꾸기를 멈춘 지 한참이나 된 내가 어떤 글을?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는 지금 내가 어떤 글을?
수많은 막막함과 함께 묘한 설렘이 피어오르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일까. 이 기분은 또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금세 또 당장 보이는 것들, 해결해야 할 것들에 묻히지는 않을까.
이런 쓸데없이 겁만 늘어 복잡한 심경의 또 다른 어느 평범한 날. 공교롭게도 너희를 만났다 하면 어쩐지 소설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