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정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몬숲 Jul 09. 2024

내가 나를 사랑하면 치유될까?

나르시시스트와 자기 사랑

언제부터 괜찮아진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에게 결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부터이다. 돌봄이 어떤 것인지 알려면 돌봄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들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용서를 하면 자유로워진다고 한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게 되면 그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용서는 내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용서를 쉽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있거나 용서를 할 만큼의 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일 것이다. 


용서를 한 사람은 용서를 구한 사람에게 현재 기회를 주는 것이고 용서를 구한 사람은 이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인정하고 다시 하지 않을 것이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노력이 없다면 신뢰할 수 없고, 의미 없는 화해가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상처를 돌봐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그런 사랑을 받고 싶어서인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나는 꽤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무엇을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나는 끼리끼리의 법칙에 따라 나르시시스트를 만나게 된 것일까?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면 치유가 될까? 


나를 사랑하는 것이 지나치면 자기애에 함몰되어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학대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다. 그렇다면 진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어딘가에 기대어 자신을 찾아가는 존재이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뭔가를 믿고 있다. 명상을 하고, 수련을 한다.


자기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사랑하려면 상처 입은 나를 예수님께 데리고갈 때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기가 힘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왜 나는 외로울까? 


나는 하나님으로 충만해도 채움의 공간이 다른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사랑해도 인간의 사랑이 필요하고, 인간에게 사랑받는다고 해서 근원적인 결핍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혼자 있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며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 하나님과 인간에게 사랑받으며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결핍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내 안의 결핍을 인식할 수 있다. 내 안에 결핍을 인식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 


인간관계에 지칠 때는 관계에서 멀어져 집중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간을 사랑하는 기쁨도 좋지만 뭔가를 배울 때 채워지는 기쁨이 정말 크다. 


진리를 알면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한다. 진리는 예수님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 속의 다른 법은 근원적 결핍에 있다. 치유는 사랑으로 결핍이 채워질 때 일어난다. 근본적인 결핍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결핍이 채워진다는 것은 자기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혼자 할 수 없다. 예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모두가 필요하다.   



사랑 때문에 괴로웠지만 사랑을 포기하지는 말아요.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