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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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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숲 Dec 23. 2024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가 아니다.

애써 밝은 척했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나는 이제 알지. 누군가의 밝음 뒤엔 깊은 고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우울의 근원을 찾아가 봤지. 아이러니하게도 우울의 근원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에 있었어. 척하는 병. 척척박사


뭐 하러 그래. 나는 그냥 난데. 나를 달달 볶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공허함에 있었어. 이 깊은 공허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근원적 관계. 정서적 지지의 단절. 돌봄을 받는다는 것이 어떠한 개념인지 경험한 적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허무한 것들에 굴복했어. 실오라기와 같은 안정은 한숨에 끊어져 버렸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다는 게 얼마나 외롭고 괴로운 감각인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그 공허감 속에서 나는 원인을 찾아 헤매었지. 나쁜 사람들은 귀신같이 그걸 알아봤지.


내 속에 생겨난 분노는 나를 공격했어. 매일매일 이대로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세상에 나와 연관된 그 어떤 것도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편으론 죄책감이 커졌었지. 대체 내가 믿는 신앙이란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인 것인가.


그 외에 다른 것을 찾는 다면 밑 빠진 독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그게 뭔지 모르겠으니까 그랬어. 그 연결된 감정이란 게,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울타리라는 게 대체 뭐일까.


절대적 의존 존재인 유아기 때에 살아남아 성인이 되었지. 누군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진토가 되어 있겠지. 그런데 산다는 게 무엇일까.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것인데 왜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지. 납을 단 갈고리가 머리와 가슴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고통이었지. 그 허무함이라는 게 공허하면서도 고통스러워 어떻게 답을 찾아가야 할지 알지 못했지.


그런데 참으로 생명은 생명인 것이 그 허무함을 받아들이니 허무함이 더는 무게가 되지 않더라. 그래 인간은 외로운 것이고 허무한 존재이다. 이런데도 생애가 시작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내 삶의 생각들이 점점 더 생명과 가깝게 되어가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그리고 내 맘에 한 문장이 떠올랐어.

내 인생인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앞으로도 아프게 살 거란 보장 없잖아.


그렇게 좋은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갔지.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 나는 사실 듣기 싫었어. 내가 별로 좋은 사람인 것 같지 않아서.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그 말은 맞는 말이더라. 사랑받고 수용받는 느낌이 가진 힘이란 얼마나 큰 것인지. 말이라는 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어.


이 모든 경험은 다 어딘가에 쓰일 데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어 가는 과정인 것 같아. 진흙 속에서도 생명은 자라니까. 나를 통해 누군가가 살아나는 것을 경험한다면 그게 바로 예수님의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이 뭔가를 하고자 하시겠다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그게 뭘까 생각하면 절망보다 희망이야.


나는 모든 일에 실패하지 않았고

그때의 취약했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고

나를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은 있다는 것


그래, 그래. 나도 아직 나를 다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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