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브런치에 글을 쓰러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여러 번을 오갔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글로 써 내려갈 만큼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다. 생각해 보면 토해내듯이 썼던 지난날의 글들의 목록을 보며
'이 글들을 무슨 정신으로 썼던 걸까'. '어떻게 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날 것들을 또 토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인가 싶다.
나는 이제 괜찮아졌고, 이전의 일들을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잘 지내고 있다가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억울함과 분노에 또 휩싸였다가 또 어떤 날은 생존자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가
그 일들을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다가
나의 공감능력으로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다가 감정이 파국으로 떨어지기도 했으며
정서가 몸으로 나타나서 많이 아팠고, 중요한 기회들을 놓치기도 하였다.
지난 몇 개월 몇 번의 썸이 있었고, 짧은 연애를 하기도 했다.
이혼이라는 상처는 나에게 일종의 레이더를 주었다. 질질 끌고 가지 않는 것.
그렇지만 끝자락에는 항상 여전히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만 돌리며 해결하려는 습성을 보게 되었다.
책임이라는 건 좋은 건데, 지나친 책임감이 나를 괴롭게 한다.
사람이 변한다는 게 참 쉽지가 않다. 왜 내게 있는 좋은 것들은 나를 보호하지 못할까 한숨도 나온다.
지나치게 누군가를 이해하려 하고 나의 깊은 공감능력이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요소가 된다.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을 만난다던데, 난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걸까 한탄하기도 하고, '이렇게 외로움을 자꾸 느낄 거면 차라리 독신의 은사를 주세요.' 기도하기도 하였다.
누군가가 기도제목을 물으면 '독신의 은사를 받고 싶어요.'라는 나의 대답에
100이면 100 '너에게는 독신의 은사가 없어'였다.
나의 기도는 잘못되었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눈을 달라고 기도하라며
너는 남자들이 좋아할 성격과 외모가 있기 때문에 다가올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며
칭찬 같지만 칭찬이 아닌 거 같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며 지내왔다.
왜 어떤 여자는 인성이 별로 같은데 좋은 남자를 만나고
왜 어떤 여자는 쓰레기 컬렉터가 되는 걸까. 똥차 가면 벤츠온다더니, 똥차가 가면 똥차가 온다.
신앙과 정치적 성향 두루두루 어떤 가치관에 따라 다른 데이트들을 해보았지만
신앙이 괜찮은가 싶으면 인성이 별로고 신앙이 없으면 길게 가지 못하였다.
여기저기에도 속해있지 못한 느낌이랄까.
결혼한 친구를 만나서 나의 이런 신세한탄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니
'남편이 있어도 외로워'라고 말하였다.
그 말은 사실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혼자여도 외롭고, 남편이 있어도 외롭다면 남편이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사람은 원래 자신에게 없는 것을 더 부러워하나 보다.
애가 있는 상태에서 이혼한 언니들은 애가 없는 나를 부러워하고,
나는 남편이 있는 여자들을 부러워하고
물론 남편도 남편 나름이겠지만,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난 정말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하는 생각들로 지내었다.
호감 가는 사람이 있는데, 처음 그에게 나는 만만한 대상이었던 것인지 말을 함부로 하였다.
거리를 두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좀 더 당당해졌고,
그가 나에게 감정을 흘리는 것인지, 내가 홀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상태로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같다는 생각에 더 가깝게 지나고 있다.
나로서 온전히 선다는 것, 정서적 독립에 대하여 많이 생각한다.
내가 나되게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다.
깨어짐 속에 은혜는 있었다.
나의 깨어짐 사이로 생수가 흘러간다.
하나님이 나를 깨트리신 이유는 내 속에 흘러갈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다.
때로 그 조각들이 나를 너무 찔러대지만
내가 나로서 더 단단한 삶을 만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