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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정원

삶은 단단함을 쌓아가는 과정이야.

너무 예쁜 너.

by 레몬숲

오늘은 생일파티가 있었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콜릿케이크를 잘라 다 같이 나눠 먹었는데 A가 물을 마시려다가 놓쳐서 친구의 바지가 물에 젖었다. 친구는 괜찮은데 A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친구와 갈등이 생기면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했던 아이는 먹던 케이크를 내려놓고 사람이 없는 구석에 숨어 들어갔다. 따라가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고 있었다.


“A이. 왜 여기에서 울고 있어? 실수해서 자책감이 들어? “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유독 내 마음이 자꾸 쓰이는 아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두뇌 회전이 빨라 7세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은 감정의 언어를 쓰는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아이.


아이 같지 않아서 더 안쓰럽다.

이 아이의 삶은 얼마나 괴로울까.

사람들은 아이가 스마트폰을 하지 않고 책을 달고 사니 기특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있어 책은 친구이자, 피난처이다. 도피처이다.


나는 이 아이가 어렵지 않다. 이 행동 거지의 마음 기저가 무엇인지 알아져서

나는 이 아이가 말하지 않는 마음을 읽어주고 이 아이는 나를 너무 좋아해 준다.

그래서 너무 안쓰럽고 딱하고 너무 소중하다.

나 같아서.


“이럴 때마다 혼자 있고 싶어?”

아이는 눈물을 더 많이 흘리는데 소리 없이 울었다.


“그런데 A야.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실수한 거잖아.”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지금 A의 마음에 들어온 그 생각에 계속 마음을 주지 마. 오늘 우리 설교 시간에 낚싯대로 물고기를 잡는 것처럼 사탄이 우리에게 나쁜 생각을 심어준다고 한 거 기억하지?”


“그럼 이게 사탄이 주는 생각이에요?”


“사탄이 주는 생각일 수도 있고, A가 스스로 생각하는 거 일 수도 있어.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절대 아니고, 너를 사랑한다고,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고 하시는 거야. 순간 떠오르는 감정에 너의 마음을 주지 마.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계속 실수를 하며 살아갈 건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확 들어오는 자책감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 힘들잖아. 괜찮아. 나는 어른인데도 엄청 실수해. 실수하고 나서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하면 돼. 일부로 한 거는 잘못된 거지만 실수잖아. 이럴 때는 혼자서 자책하지 말고 예수님한테 말하는 거야.”


“뭐라고요?”


“지금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예수님 저 지금 자책감이 들어요. 근데 예수님은 저를 많이 사랑하시죠. 이 자책감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닌 거 알아요. 저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도와주세요.”


나를 뻔히 쳐다보는 아이를 조금 다독여주니 눈물이 그쳤다.


나는 이 아이와의 대화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되어 나는 하나님이 되고

이 아이는 내가 되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 눈물과 사랑을 본다.

내 입으로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에 심긴다.


아이의 엄마가 와서 "네가 이렇게 하면 친구가 더 미안해지는 거야. 그만 울어."라고 했다.

그대로 수용되어 보는 경험이 없으면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살피다가 자기 스스로가 무너진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진다.


그러나 아이의 엄마는 솔직했다.

"내 자식이지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이의 엄마는 신실한 사람이다.


“오늘 오후에는 나랑 같이 대화 많이 하자!”

식당에 가서 같이 어묵 국수를 먹고 아이의 표정은 다시 7세 아이처럼 밝아졌다.


다시 유치부실에 내려와서

나는 고깔콘 한 봉지를 창고에서 가져와서 매트 위에 책상을 펼쳤고,

아이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 책을 3권 가져왔다.


“지금은 기분이 어때? “


“아까 안 좋았던 게 다 사라졌어요. 다 까먹은 거처럼요”


“거바~ 감정은 다 지나가는 거야! 너무너무 잘했어!”


오후예배까지 시간이 남아서 사무실에 다시 왔다.

그러고 나서는 자책감이 몰려왔다.


나를 "그대"라고 부르는 이 사람을 좋아했었다.

그는 내 어깨와 허리에 손을 얹는 가벼운 스킨십을 한다.

내가 귀엽다고 느껴지면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나는 그 손길이 싫지 않았다. 좋아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여자를 아주 잘 알고 감정을 건들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안다.

나는 억척스러운 과정들을 통과했음에도 여전히 순수한 새살이 항상 자라나지만

이 사람은 뻔히 보이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불여우에 감정조종에 능숙한 사람이다.

나는 그와의 관계에서 내 마음이 조종당하고 있음을 느낀다.

책임 없는 쾌락의 관계랄까.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정서적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의 상처에 대해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내가 그를 향해 갖는 이 마음은 연민인지, 진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든다는 건 사랑에서 오는 건데

나는 이 사람의 매력에 홀린걸까.

아니면 내 스스로 익숙한 패턴에 반응하는걸까.

사람을 볼 때 단점보다는 장점만 보려고 하는 나의 따뜻함이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걸까.

그렇지만 나의 성장은 이 사람의 감정을 내가 대신 처리해주고 싶은

메시아 콤플렉스에서는 벗어났다는 것이다.

너의 표정, 행동, 눈빛에 나는 반응하지만,

그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알아.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그 마음을 충족시켜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나는 또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해버린다.

내 마음이 홀라당 항상 드러난다. 나는 착한 건지, 무딘 건지, 늘 창고를 보여주는 것 같이 산다.

호기심이 충족된 그는 "시답잖은 소리"라고 했다.

그의 몇 번의 말실수와 무례함에도 나는 몇 번이고 이해를 했다.


왜 나는 타인을 이토록 사랑하려고 하는 걸까.

사랑이란 참 좋은 것인데,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랑은 집이 없는 달팽이와 같다.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은데, 나는 왜 이 어둠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하는 걸까.


사실 내가 가진 것은 다 좋은 것인데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정서적 지지와 따뜻함. 나의 결핍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아주 취약하다.


‘아, 속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오늘 오전에 기도했던 게 떠올랐다.

“하나님 저 왠지 해낼 수 있을 거 같아요. 마음이 단단해지고 어떤 상황이 있어도 괜찮을 것만 같아요.”


하나님은 단단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 단단해진 마음을 주시는 게 아니라

단단해질 마음이 생길 상황을 여신다.

그래, 하나님을 의지하자. 하나님은 딱 맞는 때에, 정확하게 일하시는 분이다.

그는 창조주이며,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생각을 전환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나는 내 마음이 무너져도 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어른이니까.

어른이 되어도 감정은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책임지고 조절할 줄 안다는 것이다.


오후예배 찬양을 부르는데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지난주부터 대학원 과제 + 강의 + 사역으로 하루 4시간도 못 잤지만

공동체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서로를 당연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자체로 살아갈 힘이 또 생겨난다.

그 당연하게 여기지 않음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의 사이에는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

진리 안에서 사랑을 배워간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따뜻한 인격들이 모여

다듬어 지지 않은 날 것인 상태 그대로 서로를 사랑한다.

때로는 뾰족한 채로 사랑하지만, 그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한다.

이해가 되어지는 관계여서 영혼이 살아난다.

나도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결핍이 무엇인지 알아서 더 애틋해지는 사람들이라고.

나의 밝음 이면의 외로움과 아픔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그래, 이렇게 일상 속에서 계속해서 단단해지는 거야.

삶이 주어졌다는 것은 이 여정 속에서 단단함을 하나씩 더 쌓아간다는 거야.

정말 멋지다. 나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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