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 앵커의 이혼
스레드 알고리즘에 '김주하 이혼'과 관련된 글이 며칠 계속 올라왔다. 집에 티비가 없고 방송인들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김주하 앵커가 이혼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스레드에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보면서 그녀의 일에 대해 궁금해졌고, 유튜브 '데이앤나잇'에 올라와 있는 48분짜리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가 겪은 상황을 대신 말하는 듯한 그녀의 경험들과 생각에 당시 내가 겪었던 상황들이 펼쳐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저 자리에 앉아있을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우리가 겪은 그 일들이 없었던 것처럼 잊힐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생각보단 덤덤했다. 아무런 동요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찌르는 듯한 감정은 사라졌고 몇몇 단어에 대한 나의 반응이 조금 옅어졌다.
패널들의 할 말을 잃은 반응을 보며 그녀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 감사했다. 사회에서 누군가가 목표로 삼고 싶은 자리에 올라온 사람이 가진 영향력에서 오는 초연함인 걸까. 아니면 엄마이기 때문에 강해져야 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일들을 말하였다. 그녀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준 오은영 박사님께 감사했다.
오은영 :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는데 왜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김주하 : 저는 그때 그 사람 밖에 없었어요. 못 먹으면서 일할 때 도시락을 싸다 주고 그런 데서 제가 많이 흔들렸죠. 이렇게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되겠다.
오은영 : 누구나 그 사람이 내 옆에서 나를 아껴준다면 이 사람과 삶을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하죠. 그거는 너무나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결혼을 했는데 주하 씨가 생각하기에 아.. 아닌가 보네? 할 때가 언제였나요?
내 인생에서 가장 일적으로 잘되었던 시기, 어딜 가나 인정받고 좋은 기회들이 생겨나고, 돈도 꽤 잘 모아졌던 때. 나라는 사람보다 기능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능력을 '착취'하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싸여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시기.
나는 심적으로 지쳐있었고, 어른이 되어서 내 감정을 시시콜콜하게 누군가에게 기댈 수는 없었다. 열심히 사는 어른들은 다 이렇지 않나. 왜 이게 나의 취약점이 됐을까?
누군가의 소개로 그 사람을 만났다. (나는 아직도 그 한 번의 전화받은 것을 후회한다.)
결혼을 하기 전에 혼인신고를 했던 적이 있었던 것도
"너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이혼 못할 거야."라고 말했던 것도
그 사람의 폭력성을 가장 잘 아는 건 그 사람의 엄마였던 것도
그 사람의 엄마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도
신혼여행 3일 차 되던 때에 이혼하자고 했던 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 이혼하자고 해서 알겠다고 하니 휴대폰이 방전되도록 전화를 해댄 것도
자기가 할 말이 없으면 "칼로 찔러 죽여야겠다"라고 말했던 것도
나와 너무나 비슷해서, 그냥 멍하게 듣게 되었다.
오은영 : 어떤 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혼자 감당하면서 자기반성을 통해 내 탓이란 생각을 많이 해요. 어떤 면에서 그렇게 좀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거 같으세요?
김주하 : 저 사람의 마음은 제가 모르니까 저 사람의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밖에 없잖아요. 상대방한테 얘기를 해서 안 되면 내가 바뀌어야죠. 그러니까 내 탓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죠.
자기반성을 할 줄 안다는 건 참 귀한 덕목인데, 어떤 이들은 그 자기반성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내질 못한다. 똑똑하고 이타적일수록 더 그렇다. 인간이란, 인생이란 무엇일까. 왜 그럴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은영 : 이게 되게 조심스러운 말인데요.. 제가 한 말 기억해요? 그게 일종의 오만함이야. 네가 무슨 나 이런 사람이야! 이런 식의 교만과 잘난 척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다 감당할 수 있고, 나는 그런 사람이고 이걸 내가 다 처리할 수 있고 결국은 참아가면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이라고 내가 이야기해 준 적이 있는 거 같아요.
김주하 : 그렇게 살지 말라 그러셨어요.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닥친 일에, 30대가 막 들어섰던 결혼적령기의 가장 좋을 때. 나는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어 외로움이 몰려올 때, 나는 여전히 내 탓을 한다. 그런 사람을 걸러내지 못한 건 나의 탓이라고.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아직도 자기 탓을 하고 있다는 말에 안타까워했던 개그맨 문세윤의 반응이 나에게 하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되었다. 내가 겪었던 일이 큰일이었구나. 그치만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감사해야지. 감사할 것들을 찾으면 수도 없지. 생각을 고쳐먹는다.
왜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이용당해야 하는 걸까. 세상이 그냥 그렇게 정해진 걸까. 그런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는 나의 잘못인 걸까. 오은영 박사님 말처럼 그 사람의 잘못인 걸까.
세상의 많은 유책 배우자들은 그들의 또 다른 연인들에게는 유책의 모습일까 아니면 한없이 다정한 남자일까. 나에게 유책배우자였던 그의 연인은 그의 유책에도 참고 사는 걸까 아니면 그는 그 사람에게는 사랑꾼이 되는 걸까.
"제 이야기를 해야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죠"라는 김주하 앵커의 말을 통해 나는 그녀가 신뢰할만한 사람인 것이 알아졌다.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자 1순위'였던 것도 몰랐지만 그녀의 한마디 대답을 통해 그녀가 추구하는 정직이라는 가치에 대해 그녀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좋은 사람인 것이 알아졌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을 다시 떠올리면서도 그것을 말하는 이유가 일에 대한 책임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란 게 한없이 고맙고, 너무나 예뻤다.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그녀가 가진 스펙인 외모와 능력 때문이 아니라, 성품에 있구나.
어떤 사람들은 '왜 예쁘고 착한 사람이 그런 남자를 골랐냐'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건 정말 겪어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 아니냐고 혼잣말을 했다.
'여자는 이래서 하향혼을 하면 안 된다'는 댓글에는 그럼 세상에 완벽한 남자가 어디 있을까, 결국 어떤 남자를 만나도 그 사람의 연약한 점을 품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아무리 잘나도 남편 복은 따로 있는 것 같다'는 댓글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직 나도 보는 안목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어서다. 좋은 남편을 만나야 해결이 될 감정의 기저일까 아니면 아직 괜찮아지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하나님이 원래 인간은 관계적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의 이런 외로움은 안고 가야 하는 거야' 하는 헷갈린 상태로 '그래도 나는 애가 없어서 다행이다'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들었다.
내 안에 있는 원함 들을 두려움 없이 밖으로 꺼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차분히 나의 말을 할 수 있지만,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상대방일수록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는 익숙한 패턴을 발견한다.
이럴 땐 나는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좋은 것들을 많이 가졌는데도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허한의 수식어들만이 생각난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이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종의 폭력이라는 말을 들었다. 말로써 상처받은 경험이 많아 자기 주장하는 것을 정서적으로 매우 피곤해하는 편인데, 이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된다니 자기를 사랑하고 어떤 순간에도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탄탄한 마음의 배경을 갖고 싶었다. 이미 내 안에 있을 강인함에 확신을 갖고 싶다.
불안을 다스리지 못하면 남이 만든 두려움에 복종하게 된다. 타인을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로 대했던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나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끝날 관계였는데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 나는 아직 무력하다.
예쁜 얼굴보다 그녀의 가녀린 손목이, 너무 여성스럽고 예뻐서 한참을 쳐다봤다. 같은 일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위로와 그녀가 정말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인 걸까. 그녀의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그녀에게 있어 하나님은 어떤 존재일까 궁금하다.
이런 고통을 겪고 나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마음이 더 생겼다는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겪었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수밖에 없는, 알아지는 영역이 생겼다는 건 특권인걸까, 아니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택한 도피처 같은 걸까.
어쨌든 잃은 것보다 배운 것이 많은 것은 맞고 그렇게 생각해야 또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났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 참 이렇게 산다는 건 의미 있고, 좋은 건데. 막상 그 시간을 통과해 가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그냥 할 수 있는 거를 해야지. 책을 읽고, 자연을 산책하고, 나에 대해 알아가는 거지. 하며 김주하 앵커와 같은 그녀들이 정말 잘 지냈으면 좋겠다. 행복하면 좋겠다고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