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던 단골 카페 사장님이었다. 나는 아보카도를 좋아해서 아보카도가 들어간 음식을 찾아보는 편이다. 카페 메뉴 중에 아보카도 라테가 있어서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청담동에서 카페를 하다가 학교 학생들에게 저렴하게 커피를 판매하기 위해서 오픈한 매장이었다.
“왜 항상 음료를 두 잔씩 주문해요?”
사장님의 마음이 감사해서 카페에 오면 항상 2잔을 주문했다. 이런 좋은 취지를 가진 카페는 오래오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 나름의 후원이었다. 2잔을 구매해도 7,500원인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날은 손에 두꺼운 책을 들고 있어서 커피 캐리어에 아보카도 라테와 디카페인 콜드브루를 넣어 픽업했다. 깨끗한 커피 캐리어를 버리기가 아까워서 그대로 가져가서 돌려드렸더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면서 내 개인 번호를 물어봤다.
그래서 첫 번째 소개팅을 받았다. 아는 지인의 아들인데, 결혼은 둘만 하는 게 아니라 부모도 봐야 하는 거라면서 부모님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고 소개를 받아보라고 했다. 사장님 카페에서 첫 소개팅을 받았는데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첫 소개팅남은 첫 만남에 1시간이나 늦었다. 첫 만남에 차를 가져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부모님 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늦었다고 했다. 나는 그 소개팅 남이 1시간 늦은 것보다 차를 가져와야 할지 말지를 '부모님 하고 이야기'했다는 것이 별로였고, '1시간'을 늦었다는 것이 별로였고, 대화가 안 되는 게 별로였다. 아까운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제가 하고 있던 일이 있어서 잠깐 나와서 커피 마시고 다시 들어가려고 할 계획이었거든요. 괜찮으시면 일어나도 괜찮을까요?"
카페 사장님은 들어온 지 30분도 안 됐는데 왜 나가냐면서 소개팅남 부모님이 계시는 교회가 근처에 있으니 교회에서 이 영상을 보라면서 영상 하나를 보내줬는데 '크리스천이 결혼을 준비하는 방법'이었다.
... ㅋㅋ??
나는 일단 카페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카페 사장님은 왜 벌써 헤어지냐면서 이 영상을 둘이 꼭 같이 보라고. 자기가 기도를 해봤는데 느낌이 좋더라고 했다. 나는 "배가 고파 밥을 먹으러 가야겠다."라고 말했고, 카페 밖으로 나와서 소개팅남에게 "집에 가시려면 어떤 것을 타고 가시냐"라고 물었다. 그는 "지하철을 탄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럼 오늘 만남은 여기까지 하고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드려도 되겠냐"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된다"면서 자기가 "늦어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다시 연락을 드려도 되겠냐"라고 해서 "그러라"라고 했다.
"레몬숲 씨, 소개팅 어땠어요?"
첫 번째 소개팅이 끝나고 다시 카페에 들렀다. 소개팅 남이 잘못한 것이니 사장님하고 거칠 일은 없었다. 사장님은 "그 형제가 자기가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 라면서 "어땠냐"라고 물었다. 나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했고, 그냥 느낀 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사장님은 "맞아요. 다 맘에 들 수는 없죠. 그러면 신앙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어때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종교가 다르면 만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소개팅이요? 누군데요?”
“나도 누군지는 잘 모르는데 일단 만나봐요. 너무 좋은 청년이라고 하더라고. 글쎄 첫 월급을 하나님한테 다 헌금했다지? 세상에 이런 청년이 아직도 있더라고. 일단 만나봐요. 만나보고 별로면 안 만나면 되잖아요? 형제한테 레몬숲씨 번호 알려줄게요. 괜찮죠?”
좀 쑥스러운 말이지만, 나는 호감형이라 소개팅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주변에 평판도 좋고, 예쁨도 많이 받았기에 이런 소개팅은 나에게 어색한 상황은 아니었다.
관계도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카페 사장님을 아는 사이였고, 카페 사장님 남편과 나르 지인의 아내는 대학동기이다. 나르 지인은 나르와 야간 대학동기로 나이 차이는 많이 났지만 형님-동생 하는 관계였고, 나르 지인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과 나르와 자주 만났다고 한다. 나르 지인의 아내는 내가 학교에서 강사로 잠깐 알바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수강생이었다. 나르가 일하고 있는 장애인 복지관이 나르 지인의 집과 가까웠고 나르 지인의 부부는 나르를 사위로 삼고 싶어 할 만큼 나르를 좋아했다. 나르 지인 부부는 딸이 있었는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그래서 짝으로 맺어줄 좋은 자매를 찾고 있다고 카페 사장님 부부에게 말을 했고, 카페 사장님 남편과 카페 사장님은 나르 지인 부부를 통해 나르에 대한 얘기를 들어왔는데 카페 사장님이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네 알겠습니다. 제 번호 주셔도 괜찮아요.”
몇십 분 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전도사님! 저 ㅇㅇㅇ이에요.”
“아 전도사님?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왜 전화하셨어요?”
“제가 왜 전화한 것 같아요?”
“아? 대박 헐 설마? 소개팅??????”
“맞아요. 언제 시간 되세요? 저는 오늘도 괜찮은데.”
그는 나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그는 야간 대학생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교양 수업이 야간에 있어서 수업에서 종종 마주쳤었고, 그때마다 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학원 3년 동안은 같은 학과에서 수업을 들었다. 총 7년 동안 인사 외에 연결점은 전혀 없었고 관심이 없었기에 연락처가 없었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그날 저녁 그와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이때에도 싸함을 느꼈었다. 대화를 하다가 그는 나를 빤-히 보았는데 그의 눈동자가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낯선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있고, 나는 금방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내가 좋다고 해도 안 좋아하는 척을 좀 할 것이기에 그를 오해하는 것인가 하는 망상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폭력의 눈동자를 온유의 눈동자로 착각했다. 평소에는 짜증이 날 상황에도 짜증이 안 났고, 재밌었고, 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하는 망상에 빠져들었다.
미혼의 30대 여자가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가 그를 ‘좋아해서 선택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지?'와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에게 어떻게 속지 않을 수 있었겠어.' 사이를 오간다.
그때 내 주변에는 2-3개월 만나서 결혼했다는 부부들이 많았다. 그전의 나는 사랑에 금방 빠지는 사람이었고, 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남자를 만나겠다고 기도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장단점은 있으니까, 신앙 안에서 모든 것은 새로워질 수 있으니까, 나의 넘치는 모성애로 평강공주병에 걸렸던 것이다.
소개팅도 누가 해주냐에 따라 조심해서 만나야 한다.
사람에 대한 낮은 경계심과 사랑으로 사람은 변할 것이라는 착각은 나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이 시기에 새로 부임한 교회를 가게 되었는데 지독한 나르시시스트 담임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담임목사는 자신의 말은 하늘에서 오는 거라고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든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착한 병에 빠져있었다. 나는 이렇게 판단력을 상실할 만큼 외로웠다. 싫다는 말을 잘 못하고 그냥 내가 참고 이해하면 되지 뭐에 병에 빠져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이용하기 좋은 상태의 사람인줄도 모르고. 나를 보호하려고 울타리를 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러나 내가 이 결혼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종교적 열등감 때문이었다.
나는 사랑이었지만 그것은 구걸이었다. 사랑은 구걸이 아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서 감사하다.
나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나는 마음이 불타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화상 이후의 흔적을 보며 사는 트라우마는 있지만 괜찮아질 거고 더 단단해질 거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은 나이. 그렇지만 어리지만은 않은 30대 초반. 하지만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거다. 겪지 않아도 될 상처를 겪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살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축복들이 내 삶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