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잘못한 게 없어?

울타리와 감옥 철장의 차이

by 레몬숲

엄마께 전화가 와서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엄마는 모든 상황을 잘 모르셨지만 자식에 대한 본능적 '촉'같은 게 있으셨던 것 같다. 둘 다 사역자이니 기독교 상담으로 부부상담을 알아보라고 했다(엄마는 신앙도 없으신데).


그는 상담실은 처음 와본다고 했다. 1회기 상담은 같이 받았고 상담 테스트를 했다. 2회기는 각자 1:1로 받았는데 그때 상담 선생님 앞에서 '자신이 왜 그러는지를 모르겠다' '너무 후회가 된다' 면서 울었다고 했다. 상담 선생님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희망'이란 걸 봤다고 했다. 이게 부부상담의 마지막이었다. 상담 선생님의 개인문제로 상담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가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면서 상담받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엄마에게 상담소를 다녀왔다는 명분이 필요했다.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결혼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나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상담 선생님이 둘을 불러다 놓고 그에게 말했다.

"레몬숲 씨의 상태는 자살하기 직전의 사람과 같은 우울증 수치를 보이고 있어요. 배우자를 믿지 않으면 배우자는 너무나 괴로워져요."




"너는 잘못한 게 없어?"


"내가 오빠를 남편으로서 존중하지 않아서 미안해"

(존중할 거리가 없어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나는 그에게 미안해 해야했다.)


"너는 진짜 잘못한 게 없어?"


"그냥 뭐든 내가 다 미안해"

(내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으니 그저 나는 미안한 사람으로 다 잘못한 사람이 되야했다.)


"뭐가 미안한데? "


"그냥 다 내가 미안해. 근데 오빠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를 너무 아프게 해."

(사실 나는 잘못한게 없는데 잘못을 생각해 내는거야. 그냥 나는 내 존재자체가 미안해야 했다.)


"맞는 사람에게도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문제의 원인은 항상 나였다. 나는 스스로 이 문제를 풀어갈 자신도, 힘도 없었다.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고 했다. 내가 상담을 받자고 빌면 그는 "너는 왜 인간의 방법을 쓰려고 하냐"며 화를 냈다.


나르시시스트인 자신은 문제가 없고 "네가 잘하면 된다.", "네가 도와주면 된다."라고 말했다. 나는 도와줄 힘이 없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고 하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조롱했다.


"일반 상담이 아니라 기독교상담이라고, 나는 내가 하나님을 믿기에 상담을 받는 것이다" 대답하면

"우리 형편에 상담받을 돈이 어디 있냐"라고 거부했다. 지금 나는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의 말에 괴로워하고 있으면, 그는 기도를 더하라고 했다. 그는 남편으로서 자신의 할 일은 하지 않고 나를 비난하는 것을 택했다.


그는 상담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나는 정말 그가 이해가 안 됐다.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발견하면 좋은 것 아닌가. 변화할 노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자기 발전적인 삶을 살 수가 있는데 말이다. 이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들에게는 자아성찰 능력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도움을 주는 것을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까발려지는 것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을 갖는 것 같았다. 그는 상담사를 불신했다.

"상담사인 인간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왜 인간을 의지하냐"라고 했다. "너의 과거를 생각해 봐라. 너도 결국 하나님으로 인해 회복된 것 아니냐"라고 나를 가스라이팅했다.


나는 점점 이 결혼은 잘못된 거라 심각하게 인식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불쌍한'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 결혼을 선택한 것은 나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내가 후회 없을 만큼 노력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어쩌면 폭력적인 상황에 뇌가 길들여진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너무 큰 충격들을 계속 받다 보니 어느 정도의 충격은 충격도 아닌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를 폭력 하는 그를 더 연민했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마치 매 맞는 여자가 유치장에 갇힌 폭력남편이 밥을 먹었는지 걱정하는 것처럼. 폭력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어린아이인 그를 내가 감싸주고 싶었다. 그것이 학대적인 관계인줄도 모르고 그랬다. 생각해 보면 나는 모든 일에 나를 갈아 넣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그것이 갈아 넣는 것이 아니라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그렇게 갈아 넣었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상담을 받으러 가자고 할 때 그의 눈은 완전히 돌아버려 마치 자신을 죽이려 오는 적을 상대하는 것처럼 나를 노려봤다. 나는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빌었다. 제발 상담을 받자고.


"쳐봐, 그래 쳐보라고!"


내가 상담을 받자고 하면 그는 급발진했다. 도무지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의 마지막인 것같이 그의 급발진은 위협적이다. 그의 분노에 놀라 밀쳐내면 더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 그가 날뛰면 난 두려움에 온몸이 경직되어 살아남기 위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의 역겨운 이중잣대는 그의 계부를 상대할 때 더욱 드러났다. 만만한 나에게는 함부로 대했지만, 그를 학대했던 계부에게는 감정적 연민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계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마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한 번은 계부의 생일이었는데 울고 있는 나에게 "그래도 결혼하고 시아버지의 첫 번째 생신인데 생신 축하드린다고 연락하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자신을 학대한 사람에게는 복종하고 자신에게 친절과 진심을 다하는 사람을 함부로 한다는 게 참 우스웠다. 사실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할 때 어쩔 땐 진심이었지만 대부분은 살아남기 위해 그냥 말했다. 나는 그 미친놈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는 나를 보면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내가 싫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그의 이미지를 위한 도구였다. 그는 나를 통제하는 감각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부 상담을 해준 상담사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자 나는 그 상담소의 소장님에게 상담을 받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태어나서부터 보살핌이 뭔지를 경험한 적이 없는 것 같다"라고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큰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학대 속에서 자라났다. 나는 마음속에 눌린 감정이 많았다. 마음속에 사연을 가득 안고 사는 사람들은 곧 터질 것 같은 풍선을 가슴에 안고 산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노라고 믿으면서도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연을 가졌다는 게 사람들을 속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참으로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몰랐다. "도와달라"는 말은 타인을 성가시고 귀찮게 하는 것이라 여겼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답을 맞히고 싶어서 뇌가 엄청나게 돌아가는 아이. 이런 왕성한 뇌활동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일어났다. 내가 가진 은사는 일을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인간관계는 일처럼 맺는 것이 아니다. 경계의 교집합 속에서 관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넘기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생기는지 배웠다. 한 번씩 올라오는 자기 비하, 자책, 자기혐오에게는 당할 방도가 없다.


내가 겪은 일을 글로 쓰기까지 고민했던 것은 악몽이었던 고통의 시간을 다시 기억해 내야 한다는 거.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게 너무나 괴롭다. 그러나 글을 쓰게 되니 '직면' 해야 했고, 직면하다 보니 이제 글쓰기로 나의 마음을 살핀다. 기록이 주는 힘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글쓰기는 내 삶의 구원이다.


철장을 뚫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반드시 내가 직접 뜯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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