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책임지려 했다.

하나님 만나러 간다

by 레몬숲

외롭다. 너무나도 외롭다.

길을 잃었다.

완전히 속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있는 나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나를 이런 상태로 두게 한 결정을 한 나의 존재에 대한 혐오이다. 나는 내가 속았다는 게 너무 억울했지만 이 결혼은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노력을 하다 살아서는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것은 '하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상황이라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니까. 나는 나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이 아픈 것이 싫었다. 모두를 아프게 할 바에는 내가 대신 고통을 지겠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에 걸리면 뇌가 정말 망가진다. 우울증은 무서운 질병이다. 병원에서 준 약들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었으나 근본적인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말초신경계를 자극하는 약들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살아남기 위하여 억눌러 왔던 모든 감정의 불들이 하나씩 꺼지면서 '의미 없음'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무의미라는 이름으로 온 자해였다. 내가 이런 인생 사기를 당했다니, 저런 인간을 내가 선택했다니, 나 자신이 너무 너무 미웠다.


결혼을 하려면 일정의 돈을 모아야 한다. 열심히 살면 무엇을 하나. 돈은 벌어서 무엇을 하나. 결국에 모든 것은 공수래공수거인데.


인간관계 관련 서적들을 열심히 찾아봤었다. 열심히 인간에 대해서 공부하면 무엇을 하나. 결국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것은 '끝'이 나는데. 내가 열심히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인생을 더 살면 무엇하나. 이것을 이겨내면 또 다른 슬픔이 오는데.

이겨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치,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자책감, 그리고 그날 SNS 들을 지우면서 나는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내가 열정적이고 행복하게 사는 줄 알 텐데 나는 거짓인생을 살아가고 있구나.



중증우울증으로 누워있는 나에게 그는 게으르다고 말했다. 나는 '맞아. 내가 멍청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지'에서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너의 그 말 때문이라고' 대꾸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밤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


당시 나는 실업급여를 받고 있었고, 인간이 싫어 집 밖에 전혀 나가질 않았기 때문에 돈 쓸 일이 없었다. 내 앞으로 나가는 생활비는 이미 나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나가고 있었고, 같이 살고 있는 집도 내 명의의 전세였다. 상담소, 정신과, 수면센터에 들어가는 비용도 내가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가 게으르다니? 몸만 들어온 네가? 네가? 네가????? 네가???


'네가 나에게 게으르다고 하는 것은 부러워서 잖아. 그래 그냥 그렇게 생각해라' 하는 자포자기의 마음은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나는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시작하면 괴로웠다.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면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나의 머릿속에 기준점을 찍어놓고 그 기준점을 넘지 못했다는 불안함이 찾아오면 스스로를 때리며 자해했다. 내가 나를 처벌할 때 느끼는 고통이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나는 자해하는 습관에 중독 되었다.


이런 습관적인 특징은 나의 욕구를 희생시키고 다른 사람의 욕구를 우선시하도록 살아온 것에서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아무 생각 없이 타인의 욕구에 맞춰 살고 있었다. 이는 자기 파괴적인 삶의 습관이었다. 인생을 사는 지혜에는 나의 한계를 알고 'NO'라고 말하는 것에 있다.


유서를 쓰고 약을 모았다. 정신과에서 받아오는 약들과 수면센터에서 받아오는 약들을 먹지 않고 통에다가 모았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떠날 수도 없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하나님, 사람들이 말하는 조건 좋은 남자들을 다 놓치고 신앙을 지키며 살아왔는데 그 끝이 이것인가요.

내 눈에 정욕대로 살지 말고 섬기며 살라하셔서 내가 원하는 사랑을 가진 남자가 아닌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선택했는데 그 끝이 이것인가요.

세상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 끝이 이것인가요.

내가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자기 부인해 왔는데 그 믿음의 상급이란 것이 이것인가요.


하나님은 왜 아무런 답이 없으신가요. 왜 아무리 기도해도 저에게 답하지 않으시나요. 결국 하나님도 이렇게 하시네요. 하나님, 지금 하나님이 저를 부르시는 것이죠. 저는 하나님 옆에서 살고 싶어요. 하나님 저는 이제 고통을 견딜 힘이 남아있질 않아요. 사람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하나님 저를 이대로 데려가 주세요. 하나님 저를 살려두지 마세요. 저를 이렇게 제발 데려가 주세요. 하나님 저는 아프게 갈 용기가 없어요. 그러니 이대로 데려가 주세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 곁에 있고 싶어요.


하나님 왜 대답하지 않으시나요. 하나님 저 지금 하나님 만나러 가고 있어요. 조금만 더 있으면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하나님을 너무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지쳤어요. 이제는 정말 쉬고 싶어요. 내일에 대한 기대가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지금 이대로 아프지 않게 영원히 자는 것 뿐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고 물어봐야겠다는 행동을 했다.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죽음을 선택하기로 한 마음의 깊숙한 동기에는 죽어있는 내 모습을 보고 그가 평생 후회하길 바라는 복수심도 있었다.


나는 하나님을 오해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죽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이미 단번에 모든 일에 희생하셨다.


'나에게는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일어날 때, 인간의 절망 속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하나님은 이해하신다. 그는 나를 만드셨고, 나를 깊이 이해하신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자기중심적 신앙에서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가고 흑암이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을 느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 계신다. 그래도 계속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악의 패배를 의미한다.




그 마음 표현하기 힘들 거예요. 인생은 외로우니까요. 그렇지만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나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거든요. 답은 당신 안에 있어요. 당신의 고유하고 특별함 안에 당신 삶의 지도가 숨겨져 있거든요. 먼저 자신을 돌봐주세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인생은 과정입니다. 죄책감은 현재 상황이 잘못된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마음이에요. 그러니 소중한 당신 안에 있는 상처와 결핍을 돌봐주세요.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해주세요. 그래야 타인도 당신을 소중하게 대합니다.


저는 커튼부터 열었어요. 커튼을 열고 창문을 열고 화분에 물을 주었어요. 사람이라는게 무서워서 버스도 지하철도 못타던 제가 시작했던 것은 낮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 이게 조금 괜찮아지면 동네 산책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넓혀 갔어요.


저를 보세요. 1년 전의 저는 제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상상하지도 못했어요. 아예 올해는 저의 상상 속에도 없었어요. 저도 여전히 과정 중에 있어요. 당신도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응원할게요.


그러니 스스로 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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