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결혼을 선택했던 진짜 이유

열등감

by 레몬숲

강릉으로 데이트를 간 적이 있다. 나는 바다를 보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바다를 보면서 참 예쁘다고 하잖아요. 바다는 참 예쁘기도 하죠. 그런데 저 속에 있는 생물들은 정말 행복하기만 할까요? 누구는 살아가고 누구는 죽어가고, 약육강식이 있고, 누구는 덩치가 커서 금방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누구는 온몸을 던져 지나가야 할 거예요. 사람들은 누군가의 인생을 보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그 속은 어떨지 그 사람만 아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요.


그는 나의 말을 듣고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저보다 어린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처음 느껴봐요. 어떻게 바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우와.. 제가 어떻게 레몬숲 씨 같은 사람을 만나겠어요.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셨나봐요. "


동태탕을 먹으러 갔다. 나는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아 어딘가 이동할 때에는 확인서가 필요했다. 출장을 다닐 땐 그전날 보건소나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이때는 백신을 맞지 않으면 아예 출입이 어려웠던 때라 괜히 나 때문에 식당에 들어갈 수는 없는 걸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때문에 식당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는데 미안해요."


"괜찮아요! 우리를 안 받아주면 식당이 손해인 거죠!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동태탕을 먹으면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 그에게 물었다.


"왜 아무 말 없이 동태탕만 먹어요?


"우리 처음 만난 날 전도사님이 저한테 한 말이 자꾸 생각이 나서요. 그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가 하나님이었다면 딸아... 정말 고생 많았고 수고했어.라고 말해주고 싶을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렇게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참 기쁘실 거 같아요."


나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목 놓아 눈물이 터졌다.

"딸아 수고했다"라는 말. 내가 하나님한테서 너무나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 지금 이 사람이 나에게 하나님 대신 말해주는구나. 나는 너무 위로가 필요했고 나를 받아줄 공동체가 필요했다. 그때 나는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과거의 괴로움과 공동체 안에서 느낀 상실들에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뭘 그렇게 까지 생각해?'라고 나를 너무 극성으로 생각하고 무시했었는데 이 사람은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그의 말에 높이 쌓였던 경계의 벽이 무너졌다. 그가 나와 '결혼'이란 걸 하기 위해서 애정을 퍼붓는 그때에 나는 그가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종교적 열등감이 있었다.


나는 모태신앙도 아니고, 마음이 여린 데다 내가 사역자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나는 신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믿음의 가정을 갖고 싶었다.


나는 다양한 교단을 경험해 왔으나 내가 겪어왔던 교회들에게서 공동체의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외로웠고 괴로웠다.


첫 번째 교회에서는 나와 동갑이었던 여자애가 있었다. 나를 질투하고 몹시 힘들게 하였는데 교회 간사님은 "네가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참아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중압감과 교회를 다닌다는 것만으로 가족에게 등돌림 당하였는데 말이다. 그 여자애는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커서 식이장애가 있었다. 내 옆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놓고 괴로워하였다. 내가 속했던 선교단체 간사님들도 내가 다니던 교회의 사람들을 알았는데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모르겠으나 선교단체 간사님은 나에게 와서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옳지 않다. "라고 말했다. 나는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었는데. 나는 말씀이 너무 갈급했으나 교회는 신천지문제가 터졌고, 나는 구원의 확신 밖에 없었는데 중직을 맡아야 했다.


두 번째 교회에서는 나를 나 자체로 사랑해주려 했으나 말씀이 없었다. 내가 밤새 영적인 눌림에 시달려 잠을 못 자면 목사님은 "운동을 더 하자"고 말씀했다. 나에게는 중1 때부터 시작했던 신병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소리가 들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고통 속에 괴로워했다. 그런데 운동을 하자고 하니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친구가 세 번째 교회의 전도사로 있게 되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세 번째 교회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축사를 경험하였다. 친구가 결혼을 하고 외국으로 나가면서 나랑 같은 신대원에 다니던 전도사님이 내 담당 목회자가 되었다. 그 사람은 나를 많이 아끼는 것 같았으나 말로 나를 폭력 했다.


"너네 부모님이 왜 예수를 안 믿는 줄 알아? 네가 지은 죄가 많아서 그래."

"너 왜 오늘은 그 옷 입었어? 신앙이 성숙할수록 화장을 하지 말아야지"

"너 오늘 찬양할 때 네 마음이 하나도 안 느껴지더라. 너 예전에 남자들 꼬실 때도 그랬냐?"


나는 담임 목사님의 사모님에게 이를 말했다. 사모님은 나를 정말 아끼셨다. 그리고 담임 목사님께도 말하라고 하셨다. 담임 목사님은 나를 정말 아꼈다. 그러나 교회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 전도사님은 담임목사님과 청년 때부터 계속 함께 했던 사람이었다. 말의 강도는 점점 강해졌다. 나는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내가 교회를 나오는 것이 맞다고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도사님은 좀 비겁했다. 인사권을 가진 장로님 아들에게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만만한 나에게는 폭력적인 말을 휘둘렀다. 후에 신대원 졸업할 때가 되서 나에게 뜬금없는 사과를 하였고 나도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그때의 말들이 기억에 계속 남아 있다.


네 번째 교회는 청년들이 많은 교회였다. 교회보다는 약간 캠퍼스 선교단체 느낌이었다. 담임 목사님은 신학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 교회는 방언을 엄청나게 강조했다. 교회 문을 항상 열어놓아 원할 때면 언제든 기도를 할 수가 있었다. 한날 기도 중이었는데 청년 리더라는 여자가 새로 들어온 남자한테 방언을 가르치고 있었다. "방언은 바보 같아 보이지만 입을 열어야 하는 거야. " 하면서 방언을 가르쳤다. 또 주기별로 세례식을 하였는데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다시 세례를 받게 했다. 부서를 담당하는 목회자들도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의 세례를 여러 번 받고, 세례집례를 목회자가 아닌 담당 리더 청년이 하였다. 새 가족부에 있다가 소그룹에 배정이 되면 새로운 리더가 생기는데 그 리더는 신대원을 다니는 나에게 신학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기도 신학을 잠깐 공부했다고. 어느 대학에서 공부했냐고 했더니 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정말 가스라이팅에 취약했다. 어떤 리더에게도 내가 겪고 있는 영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마음을 솔직히 열면 나의 연약함에 대해 비웃음 당하였다. 나는 더욱 신앙적 열심에 빠져들었고, 방학 때마다 금식기도원에 들어갔고 40일 금식기도를 했다. 나는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게 기도를 하였으나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불안함이 있었다. 그래서 더 종교적 열심에 빠져들었고, 종교적 열심에 빠져들수록 신앙적 열등감은 더 강해졌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 신앙적 열등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글을 쓰기 2달 전의 일이다.


나는 크고 작은 교회 몇 군데를 거치고 나를 파멸로 이끌었던 새로운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그(전남편)를 소개받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교회의 담임목사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 목사였다. 나는 문제 있는 교회가 많으니 괜찮을 거라 착각했다. 담임목사는 자신의 말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기에 교역자들은 따라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자신의 비전을 교회의 비전으로 세우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목사님이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를 그 교회로 부른 부목사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였다.


나는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역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다. 당시에 이미 나는 가스라이팅에 취약해져 있었다. 그것을 물어볼 사람이 그 나르시시스트였던 것이다... 당시에 내 주변엔 만난지 몇 달만에 결혼해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신앙이 있으면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말씀을 읽는가?

아니면 자신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을 도구로 삼는가?


우리가 얻는 구원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이미 나의 죄의 값을 십자가에서 다 지불했다. 그냥 이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이것은 크리스천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앙이 없어도 무언가를 '믿고 있는' 상태니 말이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도 결국 자신을 믿고 있다. 타인을 도구로 삼아도 될 만큼 완벽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것의 시작이 선한 의도였다 하더라도 인간은 언제든 가만히 두면 악을 향해 가고 있다.


나에겐 열등감의 대상이 종교였으나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모양으로든 결핍이 있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하여 각자 자신의 방법대로 애를 쓰며 산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악한 사람들도 많다. 내가 어떤 결핍을 채우고자 애쓰면 그 결핍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하이에나들이 존재한다.


결핍이 많은 성장과정을 겪은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정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요. 당신을 보호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거예요. 당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당신의 결핍의 원인이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 충분해요. 무언가 더할 필요도, 뺄 필요도 없이 당신이라는 존재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지어졌어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런 사랑받는 존재로 정해져 이 땅에 왔다는 것이 믿기시나요? 그러니 더 당당하게 사랑하며 살아가요. 우리. 당신의 것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당신의 소중한 것을 나누세요. 당신을 아끼는 사람과 사랑하세요.


나를 아프게 한 뾰족한 것들은 나를 죽이지 못합니다. 그 뾰족한 것들은 이제 별이 될 거예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요. 캄캄한 세상 밤하늘을 비추는 아름다운 별이요. 오늘의 밤하늘은 당신의 것이에요.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세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면 자기 자신에게 말해주세요.



"너 정말 잘하고 있어!"


제주 밤하늘 별 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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