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서러워
전세로 이사 온 집은 방이 2개고 베란다도 있어 혼자 쓰기에는 여유롭다. 동네도 조용하고 층간소음도 별로 없고 집주인도 한 건물에 산다.
집을 보러 왔을 때는 부부가 살고 있어 물건들이 많았다. 그래서 벽에서 우풍이 들어오는지 확인이 안됐었는데 이사 와보니 구옥이라 좀 많이 춥다. 집 보러 왔을 때 전기가 나눠져 있다고 들었는데 이사를 하고 보니 옆집이랑 전기세를 나눠서 내야 한다고 했다. 주인은 내가 똑똑하고 어리니 나보고 계산을 하라고. 이전에 살았던 사람은 자신들 통장을 자동이체로 하고 나눠서 냈다고 했다. 초등학생도 계산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나는 바로 거절하지 못하고 얼떨떨하여 검색을 해봤다. 찾아보니 매 달 한전에 전화를 해서 옆집이랑 내가 살고 있는 집이랑 합쳐서 뭐를 곱해서 나누기를 하는 그런 식이었다. 집주인은 내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첫 달은 본인이 하겠다고 했다.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말라고.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라고.
전기세를 내는 것은 나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쓴담? 나는 숫자가 너무 싫은데 그걸 한 달에 한 번씩 23번을 해야 된다는 게 너무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아니 왜 이사 오기 전에 말을 안 해준담?
내가 계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스트레스가 되었다. 매달 한전에 전화를 하고 정확히 맞지도 않는 숫자를 곱하기를 해서 옆집은 전기를 얼마 썼는지 빼기를 한 다음 내 통장에서 돈을 먼저 낸 다음 옆집에 다시 돈을 받는 형태가 참으로 귀찮은데 그걸 23번 해야 한다고?
집주인이 한 달 전기세를 미리 냈으니 본인에게 얼마를 보내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바로 돈을 보내드릴 테니 계산을 해주시면 안 되냐고 말했다. "사장님에게는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저는 좀 어려워서요." 라면서 "전기를 나눠서 달아주실 수 없느냐"라고 얘기했다. 집주인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그건 나중에 생각할 거고"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전기세를 계산해 본 적이 없다. 이미 하고 계신 거니까 해주시면 안 되느냐"라고 말했다. 집주인은 "자기가 몇 개월을 더 해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오늘 전기를 분리하는 공사를 했다. 두둥!
거절하는 연습을 하고 열매를 맺은 것이 참으로 기쁘구나!
그런데 집주인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여러 마디를 하고 갔다.
"oo 씨가 번거롭다해서 전기공사하는 거예요. 돈 100 나가네 "
그래서 나는 "나중에는 더 좋으실 거예요"라고 했다.
집주인은 대답 없이 나갔다.
그러더니 나를 다시 찾았다.
"벌써 세 번째네요. 분리수거를 할 때 비닐봉지에 넣어서 해야죠. 뭐 이런 거도 일일이 다 말해야 돼요? 옆 건물 사는 사람이 새로 사람 이사 왔냐고 하면서 말하더라고요."
나는 "네 그럴게요" 대답했다.
이사 온 날 내가 분명히 물어봤던 건데! 분리수거, 음식물쓰레기는 언제 해야 되냐고!
그때 집주인은 나에게 잘 분리해서 내다 놓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사용한 재활용품을 세제로 깨끗이 닦아서 박스에 예쁘게 넣어서 집 앞에 두었다.
그랬더니 집주인이 전화를 해서 "집 옆에다 두라"고 했다.
나는 "네 그럴게요" 했다.
나는 다시 예쁘게 상자에 넣어서 주말에 내놓았더니
집주인이 전화를 해서 "월/수/금"에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잖아요 ㅡ.ㅡ
그래도 대답은 "네 그럴게요" 했다.
그런데 오늘 또 나에게 "비닐봉지에 넣어서 해야죠"라고 한 것이다.
그래도 나는 "네 그럴게요"했다.
오늘 늦게 까지 일을 하고 집에 왔는데 집 앞에 내가 예쁘게 내놓았던 분리수거가 플라스틱과 엉켜 비에 젖어있다. 내가 내놓은 것이라 큰 비닐을 꺼내와 뒤처리를 했다. 그런데 내가 자는 작은 방과 거실에 전기가 안 들어온다. 온수매트에 전기가 안 들어온다. 밥통에 전기가 안 들어온다.
집주인에게 카톡을 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카톡 남깁니다. 작은 방 전기가 안 들어옵니다."
아니 근데 생각할수록 기분이 상하네. 전기는 계약할 때 말을 안 해줬던 거고 분리수거도 자기가 제대로 말을 안 해줘 놓고는 왜 나한테 "세 번째네요" 이렇게 말하지? 그전에 그럼 내놓았을 때 얘기를 해주던가 왜 이제 와서 이런담
그래서 또 카톡을 남겼다.
"동네마다 분리수거하는 방법이 다 달라서 제가 처음 이사 왔을 때 여쭤봤는데 비닐에 넣으라는 말씀은 없으셨고 종류별로만 분류하면 된다고 하셔서 박스에 깨끗이 분류해서 넣었습니다. 월수금에 내다 놓는 것도 그 이후에 다시 여쭤봐서 알게 된 것이고요! 세 번째라고 하셔서 말씀드려요.
재활용 분리수거 비닐에 넣으라고 하셔서 다시 했습니다. 집에는 큰 투명봉투가 없어서 일단 다이소 비닐에 넣었어요. 안 가져가면 주문한 투명비닐 도착하면 다시 처리할게요"
그런데 이렇게 보내고 나니 어쨌든 전기 공사를 하느라 돈 썼을 텐데 괜스레 또 고마워져서
"전화 다시 드릴게요!"라고 카톡을 남겼다.
나는 왜 한 번에 싫다고 말을 못 하는 걸까? 상대방의 말을 최대한 이해하고 싶어서 왜 이렇게 애를 쓰는 걸까? 그래도 하나가 풀릴 때까지 머리를 미친 듯이 돌리는 것은 안 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지. 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 내가 나를 보호해야지. 아무튼 내 기분 말했으니 오늘 난 한걸음 진보했다.
내일은 좋은 마음으로 대화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