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수용성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면
내 안에 있는 아이는 소리친다.
이제 그만해
가만히 있어
한다고 되겠어?
그 이후에는 어쩔건데
안전하게 살아야지
내 안의 결핍된 어린 자아가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면
시끄러운 목소리들을 끄기 위해 일단 푹 자러
동굴 속에 들어간다.
사람에게 말해봤자 온전히 나를 이해받고 있다는 마음이 들지 않고
또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동굴 속에 한참 있다가 괜찮아지면 혼자서 뭔가를 계속 적어간다.
내 안의 파괴적인 자아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적어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본질을 알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이렇구나
내가 나를 수용하고 인정해준다.
그다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한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냥 내 할 일을 한다.
나를 이해하는 한 사람? 없을 수도 있지
그런데 나에게는 예수님이 계시니까.
괜찮아. 그래도 해보는거지.
나를 기반으로 한 셀프 컨트롤과 아로마오일,
명상이 주는 이로움이 분명히 있으나
인간에게는 해도 안되는 영역이 존재한다.
그것이 어린시절 결핍과 상처에서 온 경험이라면
나에게 집중할수록 더더욱 수렁에 빠질 것이다.
편두통이 다시 시작했다.
머리가 번쩍이고 뇌혈관이 터질 것 같다. 눈앞이 핑핑돈다.
몸이 알려주는 신호에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다시 길을 찾아가야지.
(사 57:1-2)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