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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an 05. 2022

아이 둘과 떠난 제주 여행에서 배운 것

그저 아이를 바라봐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제주도는 나에게 꿈같은 섬이다. 답답할 때마다 무작정 떠나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임용고시 합격자 발표를 들었던 곳이고, 한 해에도 몇 번씩 찾아가 마음을 달래는 아지트이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제주는커녕 집 밖에 발 내미는 것조차 두려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6월에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했다. 10월, 더는 미루기 어려워서 큰맘 먹고 친정엄마와 두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두 돌 지난 아들의 첫 비행기 탑승이었다.      


‘두 아이가 비행기를 잘 타 줄까, 타서 조용히 있을 수 있을까, 소리 지르면 어쩌나,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을 할 수 있기는 할까’      


걱정이 산처럼 쌓였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가는 여행이니 기대치를 낮추기로 했다.      


-하루에 딱 한 장소만 가기

-아이들 위주로 체험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을 찾아가기

-하루 두 끼만 먹기(삼시 세 끼 챙겨 먹기 벅차다)      


이런 계획을 가지고 시작했다.     


청주 공항에 도착했다. 저녁 7시 비행기였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데 로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말릴 수가 없었다. 둘이서 서로를 잡는다고 낄낄대며 즐거워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갔다. 탑승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점점 몰려들었다. 비행기에 오르며 불안과 걱정이 엄습했다. 미리 새 장난감과 아이패드를 준비했다. 자리를 찾아 앉아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다행히 첫째는 새 장난감에 빠져 갖고 노느라 집중했다. 둘째는 아이패드로 할머니와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아이들은 내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얌전히 잘 있어줬다.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더 의젓하고 성장해 있었다.     


밤 8시, 공항에 도착했다. 다음 날 렌트하기로 했던 터라 오늘 밤엔 택시를 타고 시내까지 이동해야 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줄을 발견했다. 줄이 끝이 없게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이들 옷과 짐으로 가득 찬 큰 트렁크 두 개를 들고 두 아이를 챙겨 줄 섰다. 택시는 더디게 오고 줄은 줄어들지 모르고 밤은 깊어 가고 있었다. 혼자라면 맘 편히 언제까지라도 기다려 줄텐데... 두 아이는 지루한지 대열을 이탈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짜증을 냈다. 둘째를 안아 올렸다. 몸이 무거워지고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괜히 왔나 하는 후회가 몰아쳐왔다. 미리 예상은 했지만 어린아이와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은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우리 순서가 찾아와 숙소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혼자 숙소를 나와 렌터카 회사를 찾아갔다. 그 전엔 항상 남편이 렌트를 했었다. 남편 없이 하는 첫 여행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운전을 맡아야 했다. 처음으로 혼자 렌트를 하는 순간, 기다리면서 알고 있어야 할 보험 계약을 되뇌며 떨고 있었다. 면허 딴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예민하고 불안한 성격 탓으로 운전을 꺼려했다. 아이를 키우며 운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제 겨우 운전을 시작한 지 2년쯤 지났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울상이 된 얼굴로 새로운 도전 앞에 섰다. 어두운 그림자 같은 두려움이 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엄마다. 두 아이를 책임지는 강한 사람이다. 내 안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자신감을 애절하게 불러냈다. 렌터카 계약서를 쓰고 차에 올랐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카시트를 설치하고 의자 높낮이를 조절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니지만 나에겐 몇 날 며칠 고민해야 했던  큰 도전이었다. 천천히 조심해서 안전하게 잘할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나는 유능하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잘 해낼 것이다.’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아이를 태우고 제주 시내에서 동부 바다로 한 시간쯤 운전했다. 시내에는 큰 차들이 많고 교통량이 많아 긴장의 연속이었다. 30분쯤 달렸을까 이내 풍경은 한산해지고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들판이 마음을 달래주었다.      


‘나는 잘하고 있다.’      

그렇게 제주에서 운전하기 도전에 성공했다.      



제주 목장 드르쿰다를 찾았다. 이번 여행에서 바라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집에만 머물러야 했던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해 주기. 그거 하나가 목표이자 계획이었다. 한참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양과 염소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목장을 찾았다. 목장에 펼쳐진 잔디밭과 자전거 타기 체험공간에서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깔깔댔다. 아이들의 얼굴이 햇살에 반짝이는 웃음으로 번졌다. 그동안 갇혀 있는 것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이들은 이렇게 맘껏 뛰고 소리치고 감정을 발산하며 살아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에 휘청 였다. 오랜만에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야외에 있으니 숨쉬기가 편했다. 마음을 꺼내 쉴 수 있었다.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여행은 삶에 활기를 불어다 줬다.



둘째가 낮잠 자는 동안 첫째와 한동리 바닷가 카페를 찾았다. 결혼 전 혼자 몇 번이나 찾아왔던 좋아하는 카페였다. 평일 오후, 한가한 카페에 바닷바람이 가득 차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부드러운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아이스 라테, 딸아이는 한라봉 주스를 시킨다. 서슬 푸른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청량한 바다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여유, 그리고 딸과 온전히 함께 향유하는 시간이 새삼 감사하고 소중했다. 매일 둘째에 질투를 보내며 엄마를 차지하고 싶던 첫째도 그 시간을 즐겼다.      


“엄마랑 바다 보며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엄마도, 너무 행복하다”     


행복이 별건가. 이렇게 좋은 풍경을 보며 아무 걱정 없이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시원한 바람 한 점, 따듯한 햇살 한줄기에도 감탄하게 된다.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의 무늬와 색깔들을 한가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준다. 힘들고 팍팍한 인생에서 잠시 쉬어가라고, 인생은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고, 쉬다 가라고 속삭인다. 내 육아 인생을 돌아본다.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며 찌들어있던 주름 같은 일상을 잠시 멈춘다. 걱정과 상념은 내려놓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바람을 느껴본다. 아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해야 할 것들을 내려놓고 그저 아이를 바라본다. 눈을 맞추고 웃어준다. 그거면 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많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봐주고 웃어주고 마음을 알아주려고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다.     


여행은 자연을 바라보게 해 준다. 자연 속에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전염병으로 더 팍팍해진 육아 일상에서 잠시 쉼을 통해 마음을 재정비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여행에서 배운 여유를 잊지 말고 찾으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쉬었다 가라고. 그 가르침을 잃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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