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주방 아주머니도 철수 아저씨도 편의점 이씨도 안느가 어딘가 아픈 거라고 했지만 안느는 아무데도 아프지 않았다.
엄마가 손님과 연애를 하느라 엄마를 마리아로 불러야 하는 밤이면 안느는 조용히 가위로 색종이를 오렸다.
안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었다.
안느는 색종이 친구 아영이와 민희, 도라에몽과 소꿉놀이도 하고 마법 놀이도 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아영이는 바스락, 하고 말하고 민희는 사각, 하고 말하고 도라에몽은 덜컥, 하고 말했기 때문에 안느는 웃고 꼼지락하면 되었다. 친구들은 전부 알아들었고 그러면 안느는 다시 방긋 웃었다.
안느가 친구들과 기차여행을 하는 것을 마리아는 힐끔힐끔 보았다.
마리아가 궁금해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안느는 일부러 더 조용히 몰래 놀았다.
마리아가 여행가방에 제일 예쁜 옷들만 골라담는 것을 보며 안느는 소리없이 웃었다. 안느의 여행에 따라오고 싶은 거라면 장미쇼파 자리에 앉혀주겠다고 생각했다.
장미쇼파는 기차에서 가장 좋은 자리니까, 한번쯤은 마리아도 앉게 해주고 싶었다.
사각사각, 민희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고 안느는 창밖에 종이 꽃이 흩날리는 것을 보며 민희에게 비밀을 속삭였다.
그리고 아영이나 도라에몽이 삐치지 않게 아무 말 않은 척 쇼파에 얼굴을 묻었다.
장미가 여기 저기 피어오르는 쇼파의 결을 따라 안느의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어떤 장미는 시큼한 냄새가 났고 다른 장미는 조금 찐득거렸다.
안느가 고개를 들었을 때, 마리아는 없었다.
가방 가득 옷을 넣어 기차여행을 떠난 걸까, 안느는 도라에몽에게 기대어 누웠다.
덜커덕, 덜컥 도라에몽이 안느에게 노래하는 동안 주방 아주머니가 철수 아저씨에게 뭐라뭐라 소리를 질렀고 철수 아저씨는 뛰쳐나와 안느를 잠시 보더니 다시 달려 나갔다.
안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안느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