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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May 21. 2022

고양이가 너를 축복하기를

그래험씨는 가르릉 가르릉 목을 울렸다.

"또 시작이군."

바우는 고개를 고쳐 놓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햇살이 바우의 앞발 바로 앞에서 끊기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건물 너머로 해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토록 짧고 소중한 휴식 시간에 방해를 받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그래도 바우는 영 고개를 돌려버리지는 않았다.

청중이 있는 것을 확인하자 그래험씨는 오른 앞발의 발톱을 하나씩 으며 시간을 끌었다. 이야기를 곧바로 시작하지 않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기로 했던가?"

바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도 그래험씨는 자기가 마음먹은 이야기를 할 테니까. 다만 햇살이 느긋하게 물러나는 것을 보며 기다리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내가 아직 첫 번째 짝짓기를 해보기도 전의 일이지."

그래험씨는 주로 짝짓기철을 기준으로 셈을 해왔다. 짝짓기는 계절보다 한 해를 가늠하기 좋은 편인데, 그런 유용함을 아는 것은 고양이의 특권이라 여기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여기서 좀 먼 동네에 살고 있었다고 했잖아, 바우 자네는 기억하겠지. 내가 꼬리 이야기를 할 때 말했던 동네를 말이야."

바우는 사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험씨의 꼬리가 잘린 이야기는 퍽 재미있어서 그 일이 일어난 동네에 관한 부분도 잊지 않고 있었다. 꼬리가 잘린 이후 그 동네를 떠나온 것이 그래험씨에게는 상당히 마음 아픈 이야기였는지 자주 되새기곤 했던 것도 있다.

그래도 그래험씨를 너무 흥분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바우는 심드렁하게 햇살만 보고 있었다. 야금야금 멀어지는 햇살을 어스름이 따라잡는 중이었다.


"그 동네는 정말 고양이가 많았지. 축복 받은 곳이었어. 사람들도 친절했고, 먹을 것도 많았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그래험씨는 계속 말했다. 옛일을 떠올리는 이야기에는 그런 멋이 있어야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


무엇보다 그 동네 사람들은 고양이를 존경할 줄 알았지. 자네도 이제는 알겠지만 고양이만큼 지혜로운 동물은 세상에 없지 않은가. 고양이들이 지그시 세상을 보며 깨닫는 것들을 한낱 인간 따위가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거든.

그 동네 사람들은 그런 고귀함을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어. 우연히 마주칠 때에도 눈인사로 예의를 갖추곤 했지. 일부러 찾아와서는 삶의 방향에 대한 조언을 묻기도 했어.


그래, 그 해에 나는 아직 짝짓기의 오묘함도 겪어보지 못한 철부지였는데도 사람들의 경탄의 대상이었어. 이건 처음 얘기하는 것 같은데, 나는 고양이 중에서도 특별하게 뛰어난 고양이였거든. 나는 젖을 뗄 무렵 이미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았고 필요하지 않은 경우엔 발톱을 꺼내는 법이 없었지. 다른 새끼들이 풀밭에서 배를 드러내며 굴러다닐 때에도 나는 꼿꼿이 걸으며 수염을 떨구지 않았어. 품위와 용기가 서린 걸음이었지. 사람들은 나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며 엎드려 조아리곤 했단다. 바우 자네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그게 이미 내 뒷발바닥에 이 점이 생기기도 전의 일이야.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 중에 어떤 구두장이가 있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구두를 어쩌질 못해서 종종 두들겨 줄 사람을 찾곤 했거든, 그게 구두장이였어. 제 구두 하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 좀 현명하고 체신있는 인간이었지. 한 번은 그 구두장이가 내게 묻는 거야. 자기가 곤란에 처했는데 혜안을 구해도 되겠냐, 그런 거였어. 딱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인간의 언어란 알다시피 저속하지 않은가. 내가 해석을 해보자니 그런 뜻이었다는 게야.


아무튼 구두장이는 보아하니 사랑에 빠진 모양이었지. 그런데 그 대상이 영 좋질 못했단 말이야. 자네나 나나, 우리 동물들은 사랑과 짝짓기가 일치할 필요로부터 자유롭지 않은가. 누구와 일생을 함께할지는 새끼낳기와 꼭 같을 필요는 없지. 아니 애초에 사랑이 꼭 그렇게 거창하게 길 필요도 없고 말이야.

그런데 인간들은 그런 걸 모르지 않나. 한심하게도 자식을 보는 게 어떤 일인지도 모르니 말일세. 그런 것들을 각각 하나씩 이해하기 어려우니 죄다 뒤섞어서 받아들인단 말이야. 그나마 요새는 고양이들에게서 많이들 배우는 중이지만 그때만해도 미개했지.


그래서 그 구두장이도 새끼낳기가 짝짓기요, 짝짓기가 사랑이어야한다는 부류였던 거야. 근데 막상 사랑에 빠진 상대는 저랑 똑같은 수컷이었는데, 그 당시 그 동네에선 인간들 사이에서 돌을 맞을 일이었지. 우습지 않나. 새끼낳기 경쟁자가 줄어들면 좋은 일 아니냔 말이야. 왜 그런 걸 가지고 죄 없는 돌을 사람 몸에 던져대는지. 돌의 기분도 생각해야지.

여튼 그런 거 생각할 줄 모르는 주변을 돌아보자니, 구두장이도 참 암담했겠지. 더군다나 그 상대수컷이 저를 받아줄런지도 알 수가 없던 모양이야. 이것도 애석하기 짝이 없지. 우리네는 사랑을 전하는 것이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두려운 일은 아니지않나. 사랑하면 순전한 마음을 담아 노래하거나 바라보면 될 일이요,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좀 더 해보다가 다른 마음이 들 때까지 잊고 지내면 그 뿐이지 않겠나. 어차피 사랑이야 바람이 새로 불면 또 찾아올 것이니 말일세.


그런데 인간들은 오늘 내일 일을 모르고 또 내일도 오늘 일을 모르리란 거지. 그래서 그렇게들 오늘의 사랑에 죽자고들 매달리거든. 이게 왜 불쌍하느냐면, 아, 나는 애석하다고 했구먼. 아무튼지간에 그들이 바람을 어쩌지를 못하지 않는가. 고양이들처럼 바람을 읽고 바람과 대화하고 바람을 다룰 줄을 모르니 사랑을 가져다 주는 것이 바람이란 것도 모를 밖에.

구두장이 그녀석도 그랬던 거야. 아주 죽자고 매달렸지. 저는 어쩌면 좋으냐며 눈물을 뚝뚝 떨구더구나. 인간답게도 눈물이 헤펐지. 나는 그때껏 그런 시답잖은 눈물을 흘려본 일이 없었어. 아니 여태 없었지. 적당히 진하게 아픔을 담아 글썽이는 정도는 해보았지만 그것도 훨씬 중대한 문제였지. 하지만 그 구두장이는 그런 고상함을 모르는 그저 인간이었던지라 후둑둑 줄줄 아주 못 볼 꼴이었다구.


그래도 나는 외면하지는 않았다네. 어쩌겠는가. 지혜란 나누는 것이고 내가 고양이로 태어난 것은 그런 우둔한 자들에게 베풀기 위함인 것을. 나는 관대하게 그의 손등에 볼을 부벼 그를 위로해주었다네. 그의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말이야.


답이 뭐였냐구?

그야 당연히 고양이의 기본철학을 알려주지 않았겠는가? 이제쯤은 바우 자네도 몇 가지는 익혔을 텐데?


뭐 어찌되었건 나는 말했지.

가장 높은 담장을 차지하는 고양이가 꼭 가장 강한 고양이인 것은 아니다, 라거나

싸움이 다가올 때는 수염을 닦아두라, 와 같은 말들을 해주고  그 상대란 것이 누구이건 간에 사랑은 달리 답을 찾을 일이 아니란 것도 일깨워 주었다네. 사랑을 가져다주는 것도 바람이요, 도로 가져가는 것도 바람일 뿐, 제까짓게 뭘 어찌하고 말고 하겠느냔 말이지.


그런데 구두장이는 영 깨달아 지질 않는지 한숨을 푹푹 쉬며 일어설 생각을 안 했지. 다른 답이 듣고싶은지 내 목을 연신 긁어대며 비위를 맞추더라구. 아니 근데 그걸로 되겠냔 말이야. 생선 꼬리 하나라도, 뭐 정성 담긴 비릿한 간식을 좀 바치며 물어야지. 이 놈 하는 꼴이 영 버릇이 없었더란 말이지.

그래서 나도 그냥 입을 다물었지. 세상에 공짜란 봄이 암컷들 마음을 돋우어 짝짓기를 일으키는 것 밖에는 없단 말이야. 그런 원리도 모르면서 어딜 답을 얻으려 하느냐고 호통을 쳐야 마땅했지.


허나 말했잖는가. 나는 그 당시 아직 어렸다고. 인간들에 대한 긍휼함도 희망도 많던 시절이지. 겨우 목 좀 긁어줬다고 기분에 취한 것은 절대 아니었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공정한 고양이야. 다만 그 때엔 지금보다 인간에 관대했을 뿐이지.

그리하여 나는 큰 은혜를 베풀기로 했지. 그 구두장이가 빠진 상대라는 게 우물가 옆에서 하루종일 종잇장이나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는 자였는데, 뭐 사람 수컷 기준으로는 사랑에 빠질 법도 했는가봐. 내 눈엔 영 미숙해보였지만 말이야.

나는 그에게 구두장이의 마음을 대신 전달해주기로 했지. 그게 참 번거롭지 않았다니 나도 어리긴 했던 모양이야.


나는 그 다음날 이슬이 볕에 마르기 시작할 무렵에 구두장이가 사랑하는 상대를 찾아갔지. 제법 부지런한 사람이라 그 시각부터 종잇장이 가득한 유리문을 닦곤 했거든. 내가 그에게 찾아가 주기로 한 것도 그런 면을 높이 샀기 때문이지. 당시에도 지금도 사람들은 우리보다 게으른 편이잖는가.

아무튼 나는 그 유리문 앞에 서서 그 사람 하는 모양을 좀 관찰하고 있다가 주의를 좀 끌기 위해 야옹 하고 소리를 내었지. 아주 흔해빠진 고양이처럼 말이야. 나는 그가 쓸데없이 긴장하지 않길 바랐거든. 내가 특별히 고귀한 고양이라는걸 알아봐야 일에 방해가 될 뿐이지 않는가. 나는 그만큼 그 일에 나를 내어주었지. 희생 역시 겸손만큼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그 자는 나를 알고 있었던 거야. 무척이나 당황하더군. 내가 왜 왔는지도 아는 모양인지 물이나 고깃조각 같은 것을 내오는 대신 한참 몸둘바를 몰라 하다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더구나. 나는 모욕감보다도 낭패로구나, 하고 생각했지. 꼴을 보아하니 영 그른 일 같아서 말이야. 구두장이가 잔뜩 기대하고 있을 것 아닌가. 고양이가 나서면 다 해결이리라 여겼을 테니 말이지.

내가 책임을 다 하기 위해 기꺼이 다음 묘안을 (물론 고양이 묘자를 쓴 묘안이라네) 떠올리는 중 그가 다시 나왔네. 저도 내게 무례했던 것을 사과하고 싶은지 쭈뼛대며 말이야.

아니 그런데 미안함을 떳떳하게 말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쉬운 일이던가? 미안함이 죄책감으로, 죄책감이 좌절과 폭력으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지. 그 자식은 제 치부를 부정하며 기다란 빗자루를 휘둘렀지. 그나마도 내 몸에 맞게 하지는 않았지. 엄두도 못냈을 거야.


하지만 구두장이를 도와주려던 나의 기꺼움은 싹 달아나게 하기에 충분했다네. 게다가 가엾은 인간 두 마리를 구제한들 그게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어차피 곧 바뀔 마음들인 것을.


그런데 며칠 후 신기하게도 그 둘이 다정하게 교회 뒷편에서 손을 잡고 있더라니까?

고양이의 은총의 힘이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뜻하는 바를 이룰지니!


"


긴 이야기를 마친 그래험씨는 바우를 내려다보았다.  집중하느라 지그시 감은 두 눈이 참으로 개 다워 보였다. 그런 바우에게 고양이의 경이를 전한 것은 뿌듯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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