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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Mar 12. 2017

話頭

말머리; 말보다 앞서는 것

화두란 본래 말의 첫머리라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도입부라는 것인데 wikihow는 글의 도입부에서 1) hook the reader with a great first sentence - 멋들어진 첫문장으로 독자를 낚으라거나, 2) discuss briefly what you will be talking about the rest of the essay - 글의 나머지 부분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게 될 것인지 간략하게 말하라는, 그리고 3) transition to your thesis - 네놈 주제로 넘어가라는 조언을 한다. 글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도입부가 있겠지만 주로 '낚아라, 짧게, 주제를 말하라'는 것은 일관된 조언이다.


그런데 이는 영어로 글을 쓰는 경우를 위한 것이다. wikihow는 영문 사이트를 기본으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영어 글쓰기를 위한 조언이 나왔다 여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글쓰기 - 사적인 글쓰기 보다는 소통을 위한 틀을 갖춘 글쓰기에 대한 조언에서는 거의 언제나 이와 같은 조언들을 만나게 된다. 이를 가리켜 사대주의라 여겨도 할 말은 없다. 실제로 '합리적인' 글쓰기에 대한 역사적 전통은 수입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말 글쓰기는 어떤 화두를 가지고 있을까? 한국말의 특성과 정서를 고려하면, 말의 첫머리에는 꺼내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제나 중심이 되는 화제가 오기 보다는 그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오는 편이다. 위의 조언과 비슷하게 말해보자면, '낚아라, 흐르듯이, 주제로 옮겨가라'고 할 수 있겠다.


화두라는 말 자체는 불교용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제법 유행했던 선종의 수행법 중에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거나, 선사들이 해놓은 답을 보며 왜 저런 답을 했을까 하고 고민하는 방법이 있다는데, 이 때에 던진 질문을 '화두'라고 했단다. 마음 속에 곧 일어날 수 많은 말들의 파도에 앞서 그 말들을 일으키기 위해 던지는 돌멩이 하나 같은 것이 곧 화두이다.


그래서 고즈넉한 생각의 깊이를 즐겨 표현하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은 낚긴 낚되, 영어식 글쓰기에서 흔히 하는 것처럼 글의 내용이 드러나는 질문을 던지거나(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sharks and wales?), 부정하게 만들기 위한 다수를 전제하거나(Most people don't think of their mistakes as their own faults. 이와 같은 문장 뒤에는 곧잘 However~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의견을 피력하거나(A new president cannot bring on a new country.)하는 직접적인 hook가 아닌, 넓고 막연한 질문을 던지거나(삶이란 무엇인가?), 그 뜻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일화를 시작하거나(어떤 나그네가 우물가에서 물을 한 잔 청했다), 자기와 반대 편에 있는 의견에 대해 일단 긍정하거나 칭찬하는(강 바닥을 파서 고르게 만들면 유속이 빨라지고 물의 흐름이 원활해질 것이다. 구불구불한 강의 범람으로 수해를 입는 지역을 고려해서 물이 흘러가버리게 만들려는 의도는 일견 일리가 있다.) 식의 '낚기'를 했던 것 같다. 부지불식 간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 지금 이 글도 그렇다. 빙빙 돌려 말하고 있어서 '아 그래서 뭘 말하겠다는 건데?'라는 의문을 가지게 할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글쓰기라거나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무용한 비교이다. 그저 문화에 따라 보다 잘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있는 것이다. 다만 근래에 화두라는 말은 때로는 화제라는 뜻으로 쓰이고 때로는 시비와 비슷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말의 사회적 의미가 변화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어떠한 화제를 꺼내는 것이,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한 말의 시작을 던지는 것이, 시비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은 좀 눈여겨 볼 일이다.


위에서 살펴 본 우리식 글쓰기의 특성을 고려하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해당 화제를 다루는지 알아보기위해 보다 느긋하게 글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 '흐르듯이' 주제로 옮겨가서 깨달음을 주는 글이 과연 얼마나 있을 지는 차치물론하더라도 우선 읽어는 봐야 그 글이 시비를 거는 것인지, 실은 더 깊은 생각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시시각각 정국이 변하는 시국에, 느긋하게 글 하나를 읽어내리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더욱이 이런 때에야 말로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서둘러 의견을 내세우고 일단 반대 의견을 부정하는 것은 더욱 정확하고 빠르고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속 깊은 상호 이해를 통한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없다. 지금은 넓고 다소 막연한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결국은 연관을 가질 작은 이야기들로부터, 상대의 의견에도 최선의 예를 갖추며 쓰고, 읽고, 나누어야 하는 때다. 그래야 갈 곳 없이 분열된 마음들을 한 자리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화두를 던진다. 스스로에게 과제로 부여하기로는 매 주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싶지만 생업과 가사에 치여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시절이 허락하는 한, 화두를 던져보고자 한다. 조금은 덜 정돈되어 보일 법한 빙빙 돌리는 글로 말하고자 한다. 너의 의견이 정이냐 반이냐 따지고 싶어질만한 모호한 문지방을 밟아보고자 한다. 과연 거기까지 가야 하나 싶을만큼 먼 곳에서 시작하거나 굳이 여기까지 가져다 대어야 하나 싶을만큼 사소한 곳에서 시작해보고자 한다.


하여, 깊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무엇이 우리의 문제이고 무엇이 그것들을 문제로 만들며 무엇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드는지에 대하여, 혹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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