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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Jan 03. 2017

투토와 말하는 꽃

"안녕?"

투토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이렇게 작은 꽃과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안녕?"

바람이 꽃잎을 흔들었다. 투토의 통통한 손가락과 닮아 있었다.

"네 이름이 뭐니?"

땅 밑에서 또글또글 구르는 소리가 났다. 

"디, 영어 알파벳 네 번째 자모 이름"

투토는 눈을 크게 떴다.

"긴 이름이구나. 그럼 그냥 디라고 부를게."

꽃은 대답이 없었다. 투토는 부끄러워졌다.

"내 이름은 투토야."

꽃은 투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투토는 배가 몹시 고픈데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되었다.

"디, 내 보물을 보여줄까?"

꽃은 사양하지 않았다. 투토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투토는 형의 책상 뒷벽에 숨겨 놓았던 달력 종이를 들고 꽃에게 돌아왔다.

"이거 봐. 내 보물이야."

투토는 숨이 가빴다. 옆집 할아버지처럼 그게 뭐냐고 물으면 어쩌지. 투토는 오줌이 마려운 것 같았다.

저녁 해가 지고 있었다. 꽃은 가만히 고개를 숙여 그림을 보았다. 투토는 꽃에게 두 손을 모아 귓속말을 했다. 

"우리 엄마야."

그런데 여기가 귀가 맞을까? 투토는 꽃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꽃은 말없이 투토의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꽃의 눈은 어디에 있는 걸까? 투토는 자꾸 손을 만지작거렸다.

꽃은 아주 천천히 보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투토는 정말로 오줌이 마려워졌다. 

"나 금방 다녀올게. 아무도 보여주면 안 돼."


투토가 돌아왔을 때, 꽃은 아직도 그림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그렇게 오랫동안 투토의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투토는 꽃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투토는 꽃에게 다가가다가, 깜짝 놀랐다. 꽃이 울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안 돼, 안 돼. 엄마 얘기를 하다 울면 큰일 나. 형이 와서 소리를 지를 거야."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꽃은 눈물을 똑, 똑, 떨어뜨렸다. 투토의 눈물도 뚝, 뚝, 떨어졌다. 

"디, 이혼이 뭘까?"

"이혼, 명사, 부부가 합의 또는 재판에 의하여 혼인 관계를 인위적으로 소멸시키는 일"

투토는 눈을 크게 떴다. 

"너 아주 똑똑하구나."

그리고 투토는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모르겠어. 엄만 날 사랑하지 않는 걸까?"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꽃은 투토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어쩐지 슬픈 얼굴이었다.

"디, 사랑이 뭐야?"

땅 속에서 또글또글 구르는 소리가 났다.

"사랑, 명사,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투토는 다시 두 손을 모아 꽃에게 속삭였다.

"나는 너를 사랑해."

꽃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부드러운 꽃잎으로 투토의 볼을 쓰다듬었다. 엄마도 마지막 밤을 자기 전에 투토의 볼을 쓰다듬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에 부비며 투토는 잠이 들었었다.


목덜미가 선뜻하니 추워서 투토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밤중이었다. 

"디, 너도 춥니?"

투토는 꽃을 감싸기 위해 더 다가갔다. 뒤척이며 자리를 잡고 눕는데 어딘가에서 뚝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과자는 없었다.

투토는 꽃과 엄마와 함께 누워 눈을 감았다. 오들오들 떨려오는 것 같았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엄마는 없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영영 눈을 뜨지 않았을 텐데.


다음날 아침, 눈앞엔 꽃도 엄마 그림도 없었다.

투토는 콧물을 훌쩍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울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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