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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Aug 14. 2017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풍선

풍선을 든 아이가 말했어요.

이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풍선이에요.


벌목꾼 한스가 물었어요.

그런 게 어딨니?


아이가 말했어요.

이건 어디든 갈 수 있는 풍선이에요.


한스는 코웃음을 쳤어요.

사기꾼이로군.


수선공 아그네타가 말했어요.

보라보라 섬으로 갈 수 있니?


풍선을 든 아이가 답했어요.

당연히 갈 수 있죠.


아그네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그럴 리가. 거긴 정말 멀다고.


아이는 어깨를 으쓱했어요.


철도원 얀센 씨가 물었어요.

어딘지 모르는 곳도 갈 수 있니?


풍선을 든 아이가 갸우뚱했어요.

어떤 곳이죠?


얀센 씨가 말했어요.

다이아몬드가 잔뜩 묻힌 산이라거나.


아이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요. 거기가 어딘지 모르면 갈 수 없어요.


얀센 씨가 투덜댔어요.

그렇다면 무슨 소용이니? 아는 곳은 전부 갈 방법이 있잖아.


의사인 루드게리히 씨가 말했어요.

네 이름은 뭐니? 어디서 온 거니?


아이는 미소를 지었어요.


루드게리히 씨는 혀를 쯧쯧 찼어요.

제정신이 아닌가 보군.


작은 꽃을 든 루시아가 물었어요.

그 풍선, 파는 거에요?


아이가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 그냥 주는 거야.


루시아가 말했어요.

나 줘도 돼요? 나 지금 집에 가고 싶은데.


제빵사 빅터가 성큼 나섰어요.

안되지. 그렇게 아까운 데다 써버릴 수 있나!


빅터는 말했어요.

기왕이면 근사한 곳에 데려다 달라고 하라고.


시계수리공 찰스가 말했어요.

금세 가는 거니?


아이가 답했어요.

둥실둥실 가겠죠.


찰스가 어이 없어 했어요.

거, 평생 걸리겠군. 히말라야까지 둥실둥실 떠가면 말이야.


아이가 물었어요.

가시겠어요?


찰스가 웃었어요.

누가 그런델 정말로 가니? 그냥 하는 말이지.


장난꾸러기 크리스가 물었어요.

그런데 너는 왜 안 날아가?


아이는 대답했어요.

나는 가고 싶은 곳이 없거든.


크리스가 말했어요.

가고 싶은 곳이 없는 사람이 어딨어? 모두 어디든 가잖아.


아이가 물었어요.

너는 어디가 가고 싶은데?


크리스가 키득 거렸어요.

나는 지금 화장실에 가고 싶지.


마이스터 대공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왔어요.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아주 중요한 곳에 써야겠다.


아이가 물었어요.

어딜 가시게요?


대공이 말했어요.

적진의 한 가운데 몰래 날아간다거나.


아이가 물었어요.

지금 가시겠어요?


대공이 답했어요.

두었다 쓰지 뭐.


아이가 말했어요.

그렇게 오래 보관할 수는 없을 걸요.


대공은 말했어요.

그렇다면 소용 없지. 당장은 전쟁이 없으니까.


가정부 안나가 중얼거렸어요.

나는 엄마 집에 가고 싶은데.


아이가 물었어요.

그럼 가실래요?


안나가 한숨을 쉬었어요.

얘, 집주인이 가만 있겠니? 하루라도 쉴 수가 있어야지 말이지.


굴뚝청소부 로버트가 말했어요.

그런데 돌아오는 건 어쩌지?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어요.


로버트가 말했어요.

돌아올 수 없다면 아무데도 갈 수가 없잖아.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풍선을 가져 간 사람이 없었어요.

아이가 떠나려하자 루시아가 말했어요.

그냥 나 주라. 집에 갈래.


아이가 풍선을 건넸어요.

루시아는 둥실, 떠올랐어요.


그리고 행복한 얼굴로 둥실둥실 날아갔어요.


아그네타가 중얼거렸어요.

보라보라 섬에 갈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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