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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May 13. 2019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종종 우리는 누군가를 생각할 때, 스스로의 행동을 돌이켜볼 때 변하지 않는 타고난 기질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한 영향 때문일까? 너는 어떤 사람일 거야 라는 심리적 요소들이 때론 재밋거리로, 때론 진지하게 많이 화두가 되곤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혈액형이 아닐까 싶다. 이미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혈액형은 성격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은 본인이 경험해 본 혈액형을 보고 지레짐작 상대방을 평가한다. 이러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상대방도 '어 맞는 거 같아요'라며 동조하게 되어 '혈액형은 뻥이라던데 막상 해보면 맞는 거 같은데?'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예측하는 걸까


사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그 사람의 24시간을 항상 따라다닐 수 없고 상대방의 전체 인생을 봤을 때 내가 본 것은 매우 일부분이기 때문에 절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런 예측을 하는 걸까? 그것은 상대방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맞는다는 확신이 들 때 맞춤에 대한 만족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시도는 타인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상대방에게 맞춤형으로 대해준다. 그리고 종종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기도 한다.


타인을 규정하면 여러모로 쉽다. 어떤 게으른 행동을 했을 때 '넌 천성이 게으르니까'라는 말로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보면 '넌 원래 머리가 좋으니까'라는 단어로 그 친구의 성적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 차이가 공부량이나 방법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노력해야 하는 어떤 것이 되는데, 그럼 나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인가?라는 자기를 괴롭히는 감정이 생겨난다. 하지만 타고난 것으로 규정하면 '본래 난 할 수 없는 것이야'라든가, '우린 뇌구조가 다르니까'라며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스스로 합리화를 할 수 있다. 어느것이 진짜인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서로를 규정하는 사회


타고난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되면 상대방을 보며 '너는 XX 할 거야'라는 수식어를 쓰게 된다. 평소 게으른 모습을 보인 친구를 보면 '너는 일할 때도 게으르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연결하기가 쉽다. 매일 PC방에 오는 아이를 보면 너 반에서 성적이 중간 이하겠구나 하며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매일 PC방에 오는 아이는 사실 전교 1등이었는데 잠시 스트레스 풀러 올 수도 있고, 게으른 모습을 보이던 사람은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휴식을 취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타인에게 '너는 XX 할 거야'라고 말하지고 때론 그것이 타인의 인생을 결정짓기도 하다.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지만 존재 증명을 타인의 평가에 많이 기댄다. 나는 나대로 있지만 누군가 나를 부를 때는,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엄마, 어느 조직의 대리 등 다양하게 부르며 그것들이 모여 내가 된다. 어떤 것은 객관적인 지위를 이용해 불리지만, 어떤 것은 나의 순간의 행동을 보고 규정한다. 처음에는 회사 내 대리였지만, 회식이 있는 어느 날 술을 먹고 실수를 하게 되면 다음날부터 '쟤는 예의가 없어'라든가 '착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어'등 나를 규정하고 평가하는 온갖 호칭들이 붙는다. 더 무서운 것은 시간이 흘러도 그런 호칭들이 변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스스로 반성해 전혀 술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당시의 나만 존재한다. 종종 그날 이후 전혀 손대지 않았던 술을 다시 입에 대다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게 되었을 경우도 이렇게 말한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노력은 사라지고 너는 역시 그대로구나, 변하지 않는구나 라며 규정한다.



# 우리는 정말 고정되어 있는 걸까


누군가 내게 '외향적인 거 같아요'라고 물어본다면 '그런 거 같아요'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실제로 회사에서 내가 할 말을 웬만하면 다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해외에 갔을 땐 전혀 신기한 경험을 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지내면서 사람들과 단 한 마디도 섞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타인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닌데 타국어로 이야기하는 게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하기 싫어졌다. 숙소에 들어가면 도망치듯 침실로 들어갔고 다음날 아침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안다면 사람들이 과연 외향적이라고 말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진다. 그래서 부모님을 대할 때, 연인을 대할 때, 회사에서의 모습이 다 다르다. 그래서 '연애할 때는 잘해주더니 결혼하고 나니까 달라졌어'라는 말이 들리기도 하는데, 상황과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대하는 것이 달라진 것뿐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모습은 당연하다. 연애 초반에는 풀메이크업에 옷 하나하나에도 모두 신경 쓰지만, 자주 만나고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화장이 옅어지고 옷은 간단해진다. 어떻게 매번 풀메이크업에 예쁜 옷만 입을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결혼하고 자주보게 되면서 대하는 방법이 달리된 것 뿐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 식었다 표현하겠지만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연하게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라며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격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특성과 성격도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데 오히려 혈액형이라든지, 어디서 보고 온 점을 믿고는 그렇다고 규정한다. 더 나쁜 것은 모든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보고 그것에 기인하여 파생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모든 면을 가지고 있다.



# 맥락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워싱턴대학교 교수 유이치 쇼다는 아동 발달 연구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이다. 그는 설득력 있는 연구를 위해 웨디코 여름 캠프 프로그램에 참가한 연령대가 6~13세인 아이들을 데리고 6주에 걸쳐 캠프 활동 시간 동안 매 시간마다 아이들 84명을 추적 관찰하여 모든 장소에서의 아이들의 행동을 기록했다.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77명의 상담사 힘을 빌렸고, 기록한 시간은 총 1만 4,000 시간이 넘었다. 이 방대한 자료를 모아 꼼꼼히 살펴본 결과 모든 아동이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성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쇼다가 조사해본 결과 외향적이나 내향적 둘 중 하나를 갖는 게 아니라 모든 아동에게 두 성향이 다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여자아이는 매점에서 외향적이지만 운동장에서는 내향적인 모습이었고, 어떤 남자아이는 운동장에서는 외향적이었지만 수학 수업에서는 내향적이었다. 어떤 두 여학생은 매점과 교실에서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행동 방식이 개개인과 상황 모두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고 한 사람의 '본질적 기질'따위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쇼다는 인간의 정체성에는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다만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보편적인 것이 아닌 특정 맥락 내에서의 일관성일 뿐이었다. 쇼다의 결론에 따르면 오늘 신경과민할 정도로 운전을 조심했다면 내일도 그러할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일관적이지 않는 모습에서는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쇼다는 인간이 맥락에 따라 다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개인행동을 특정 상황과 따로 떼어서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 둘은 독립적으로 작용되는 게 아닌 상호적으로 작용된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어떻다고 규정하는 것은 특정 상황에만 해당할 일이지 그것을 보편화시켜서는 안 된다. 그보단 맥락에 따라 행동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사실 타인을 규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상대방을 대할 때 파편적 정보를 통해서만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규정한다. 그게 여태껏 살아왔던 방식이고 이것에 대해 누구도 바로 잡아주지 않았기 때문이 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 라는 사실이다'는 말처럼 우리 모두도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주변 사람들의 믿음이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러니 정말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잘 되길 빌어준다면 좋은 말을 건네고 함부로 규정짓지 말고 믿어주자. 그것이 우리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방법이자 가장 큰 도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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