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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Feb 07. 2020

실패중이라면 꼭 봐야 할 책 <슬램덩크>

한동안 반복되는 실패로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나는 평소에도 수없이 많은 실패를 한다. 그래서 이 정도 되면 실패에도 덤덤해졌겠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실패의 종류에도 기대하는 것과 기대하지 않는 것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실패는 내가 잘하고 못하고의 중요함도 있지만, 타인의 평가가 절대적인 영역이었다.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하더라도 성공할 확률을 점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시도하면서 스스로를 높게 평가했었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거듭된 실패는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끌고 가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슬램덩크가 떠올랐다.



# 열심히 살아온 당신이 위로받기 좋은 책 '슬램덩크'


힐링이라든가, 휴식이란 말, 요즘 인기 많은 에세이에서 다뤄지는 치료법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맞는 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버텨가고 있던 하루하루에 문득 슬램덩크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책 보다 한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 게 계기였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난 지금입니다!!


내게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면 늘 지금 이 순간이었던 거 같다. 이전에도 극도로 흥분될 만큼 큰 성취를 이뤄본 적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축적되어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영광의 순간은 늘 지금과 미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금이 간 것이 이번 계기였다. 현실은 좀 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만 했다. 대표적으로 나이였다. 거듭되는 거절엔 나이와도 상관이 있었는데, 나이라는 변수를 넣지 않고 영광의 순간이라며 뻔뻔한 말을 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나이라는 변수를 넣지 않고 당장 성장하는 현재 모습을 바라보면서 타인 역시 그렇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나의 영광의 순간은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 몇 번의 실패로 본연의 모습을 잃었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의 정신력에 대해 경험해보지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 업무적으로 핀치에 몰렸을 때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만, 그것이 스포츠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슬램덩크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갖는 심리와 상황극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매우 흡사함을 느꼈다. 


주장인 채치수는 덩치와 힘에 자신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뛰어난 피지컬을 맞닥드렸을 때 느끼는 심리, 잦은 블로킹으로 자신이 가진 무기가 하나 둘 없어져갈 때의 무력감을 느꼈다. 그 상황이 마치 실패를 겪으면서 마음속에 하나씩 스크래치를 내는 나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새 내 본연의 모습을 잊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 바둥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 실패하면서 한 가지 방법에만 전전긍긍했다


정공법에만 의존한 전략도 잘못되었었다. 뭐든 정공법으로만 대하는 것은 초보가 하는 짓이다. <손자병법>에서는 '정正으로 맞서고 기奇로써 승리를 결정짓는' 기정 전략을 쓰라고 말한다. 야구에서는 빠른 직구가 장점인 투수가 항상 직구만 던지면 금세 간파당한다. 그 공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공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커브, 슈트 등 변화구를 할 줄 알면 변화구로 상대의 심리를 흔들고 정공법인 직구로 승부를 볼 수 있다. 심리를 흔들고 실수를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직구를 더 정확하게 꽂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실패하면서 어떻게 하면 정을 더 단단히 세울 수 있을지만을 고민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마치 눈을 가리고 결승전을 향해 뛰어가는 경주마 같았다. 실패는 사람을 고립시키고 방황하게 한다.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내가 이미 고립된 시선을 가졌기 때문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여유가 없으니 타인의 말과 도움이 들어올 공간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크게 심호흡을 했다.



#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일어서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다


'가진 게 하나 둘 당했다고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말자. 그것이야 말로 아마추어다'. 슬램덩크를 보면서 느꼈던 점들을 쓴 여러 문구 중 하나다. 내가 실패한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시도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며, 실패한 내 모습 또한 나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또한 어디선가는 내가 거듭 실패했던 그 방법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나와 연결되었던 것에서만 필요 없다고 거절당한 걸 지도 모른다. 그러니 실패는 온전한 나의 모습도, 내가 나답기 위해 노력하는 삶에도 영향을 줄 수 없어야 한다.


누구나 살면서 실패하는 순간이 온다. 실패는 또 다른 실패를 부르고 심리적으로 더욱 압박한다.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의기소침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며 마침내는 나를 잃어버린다. 농구 초보인 강백호는 드리블도 제대로 못하는 풋내기지만 항상 실패할 때마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키며 일어섰고 나아갔다. 스스로 그게 안될 경우에도 주변 동료나 안 선생님이라는 멘토가 그에게 포기하지 않도록 도왔다. 하지만 강백호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강백호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용기, 그리고 타인에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말이다. 나이가 훌쩍 먹어간 지금 이 순간,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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