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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Mar 18. 2020

대기업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는 그의 삶은 무엇이 다르나

얼마 전에 지인을 만났다. 최근 고민거리가 있어 인사도 할 겸 고민 상담도 해보려고 만났다. 그분은 꽤 오랜 기간 동안 한 계열에 일해온 사람이다. 아울러 타인에 대한 평가도 좋은 편이다. 다만 스스로는 인성이 나쁘다고 말한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차 없이 팩트를 날리는 사람이다. 뭐 간단하게 '네가 실력이 없어서'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평가가 좋은 이유는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해 주거나 되지 않을 법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즉 동료에 대한 평판은 잘 모르겠지만(애초에 동료라는 개념이 희박한 곳이기도 하지만)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사람이라는 면에서 평가가 좋은, 아니 탁월한 수준이다.(어느 분은 그분을 말할 때 전설이라는 표현을 쓰는 분도 봤다)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프로젝트를 되게 하는 것, 잘 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쯤 되면 적당히 해도 되련만 절대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책을 본다거나 하는 학습 형태가 아니다. 그냥 '필요하니까 한다'라는 느낌에 가깝다. 본능처럼 학습하는 행동이 몸에 밴 분이었고, 경력 또한 출중한 분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조금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은 주로 대기업과 프로젝트를 많이 했기 때문에 대기업 내에서도 꽤나 이름이 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고도 한다. 그런데 나빠 보이지 않던 조건이었음에도 거절했다고 한다. 왜 그러냐라고 물으니 '자기는 조직생활과 맞지 않다'라고 답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 기간 일해온 방식이란 게 있을 것이고 지금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기업에서 내미는 조건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에 100% 공감했다. 최근 이력서를 여기저기 내면서 가장 많이 살펴본 것은 '내가 이 회사와 맞을까'라는 질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할 때 희열을 느끼는지, 즐거움을 느끼고 삶의 활력소로 이어갈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일례로 복지가 좋은 회사에 끌리지 않는다. 내 라이프스타일이 많은 회사에서 말하는 일 잘하기 좋은 환경, 복지라는 것에서 말하는 조건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워라밸, 식사 제공, 연차 눈치 없이 사용하기, 도서/교육비 지원 그 외 다수의 좋은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이 중에 내가 '진정 이것만은 좋다'라고 말할 것은 별로 없었다.


특히 내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은 복지는 해롭기도 하다. 가령 간식이 그랬다. 예전에 간식을 주는 곳에 있었는데 다니면서 5kg 넘게 쪘다. 툭하면 하나씩 짚어먹는 탓에 살이 계속 불었다. 간식은 대부분 당을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입에 자극적이고 칼로리 높다. 그걸 먹을 당장은 기분이 나아질지 몰라도 먹고 나면 기분이 정말 안 좋았다. '아 오늘도 당했구나'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복지가 좋다는 회사, 혹은 이름값이 있는 회사가 반드시 좋을까?라는 질문에는 고개가 갸웃거린다. 그래서 그분의 거절이 십분 이해가 갔다. 이름만 보고, 혹은 처우만 보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이제 정말 fit이 맞는 회사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대화가 무르익어갈 때 즈음 그분은 그런 말을 한다. '나는 뭔가를 잘 하는 것보단 도구를 잘 만지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 그 장인 정신 같은 거 말이야'. 이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취미는 목공이다. 대패질을 하는데 대충 하는 법이 없단다. 쓱싹쓱싹 할 것을 100번 1000번 문지른다고 한다. 그래서 도구에 민감하고 더 좋은 도구를 쓰기 위해 공부한다고 말한다. 이게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일반인은 알아봐 주지 않을 거란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대기업의 제안도 뿌리치는 사람이 이런 돈도 되지 않을 것에 집착하면서 그는 진정 즐거워했다.


이성으로만 생각하면 무엇이 더 좋은 삶인지 재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요소 때문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꿈을 꾸고 미래를 보며 행동한다. 나는 어떤 것을 할 때, 무엇을 상상할 때 희열을 느낄까? 그 안에 삶의 방향과 길이 있음을 그분을 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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