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열풍을 몰고 다니는 송가인. 2019년 미스 트롯에 등장해 폭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고속성장중인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대한민국을 강타하는 그녀의 인기의 이면에 7년간 무명생활을 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판소리 전공과 활동을 했지만 2010년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였고, 2012년에 본격 데뷔한 사실 오래된 가수다.
그녀의 음색에는 특색이 있다. 판소리를 전공한 영향 덕에 전통 트로트라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보컬이라는 점이다. 현대판 트로트, 이전부터 인기가 높았던 트로트의 대부분은 세미 트로트(유명한 가수로 장윤정과 홍진영, 박현빈 등)라 불리는 창법이었는데, 지금 같은 시대에 전통 트로트에 최적화된 보컬로 모두를 휘어잡은 것이다.
송가인이 장윤정이나 홍진영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진 않겠지만(반대도 마찬가지) 만약 그녀가 트렌드에 따라가 창법을 바꾸었다면 상상이 되는가? 더 나아가 지금의 송가인을 만날 수 있었을까?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비단 나뿐만은 아닐것이다.
# 비슷한 사례의 월드스타, 아널드 슈워제네거
영화배우 겸 보디빌더이며, 정치인인 그는 터미네이터를 통해 초대박을 낸 슈퍼 액션스타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영화배우를 하기 유리한 위치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할리우드는 체구가 작고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이 각광받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11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아널드는 할리우드에서 인기가 없었다. 심지어 흔한 오디션 한번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월드스타가 되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는 경쟁하러 나간 게 아니다. 이기러 나간 것이다. 나는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고정 배역을 맡으려고 굳이 경쟁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 나를 발견해줄 때를 기다렸다. 모두가 살을 빼고 금발 미남처럼 보이려 노력할 때 내가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들처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한 것은 그저 버티는 것이었다. 제작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계속 머물면서 팝콘이나 먹는 것이었다." 결국 아널드는 사람들이 잘생기고 매끈한 배우에게 점점 식상해지면서 기회를 잡았다. - <타이탄의 도구들> 중
그는 자기 자신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시장에서 원하는 모습과 일치하지 않음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구태여 바꾸려 하지 않았으며 대신 그는 자신감 있는 얼굴로 기다렸다. 자신의 시대가 올 것을 예감하듯.
아널드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 사라지지 마라. 그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볼 때까지 기다려라. 퇴장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누군가가 나를 기어이, 본다."
#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살다 보면 이게 맞을까 하며 의심이 들 때가 있다. 회사에 거절당할 때, 고객에게 거절당할 때 내가 가진 능력이 시장에 통용되지 않는가 하고 좌절할 때가 있다. 그때 우리가 취하는 행동은 두 가지다. 나를 바꾸거나, 나의 장점을 더욱 극대화하거나.
이때 대다수가 전자를 선택한다. 이 부분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해보고 내린 결론은, 우선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결론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이뤄낸 것이 없다고 느낄 때' 혹은 '내가 이뤄낸 것들이 의미 없다고 느낄 때'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것들을 하찮게 보면 쉽게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송가인이 국악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전공을 무기로 끝까지 해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수식어에 '전통 트로트'라는 타이틀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비록 길고 긴 무명생활이라 하더라도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을 '자신을 믿는다'라고 표현한다. 물론 그녀가 그 과정을 어떻게, 어떤 심정으로 버텼는지 알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자신의 것을 잘 지켜냈기 때문에 마침내 우리가 그녀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세월이라는 풍파는 사람을 계속 쥐고 흔든다. 때론 그 풍량에 흔들리고, 꺾이고, 난파된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무기가 없다면 타인의 목소리에 자꾸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송가인과 아널드의 사례처럼 기회가 오는 것은 운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시기가 올 때까지 자신의 역량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갈고닦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의 것을 잃지 않는 것. 소중히 가꿀 줄 알고 자신을 믿을 줄 아는 것.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생각한 계기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상기하게 해준 그녀에게 감사의 말 올린다.
참고:
책 <타이탄의 도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