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근 May 12. 2020

지인이라고 가격을 깎지 않았다

내 눈썹은 끝으로 갈수록 텅 비어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눈썹이 반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니 다른 사람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눈썹문신을 해야겠다 생각은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할 기회가 생겨 어디서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스터디원 분 중 한분이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게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모임 때 가격이 어느 정돈지 물어봤다.


나: 눈썹문신하고 싶은데 얼마에 하세요?
상대방: (잠시 머뭇거린다)
나: 지인이라고 깎아주지 말고 그냥 정가 말해줘 봐요.
상대방: 저희는 oo에요
나: 그럼 그 가격에 하시죠.


그 사람이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아는 사람이니 싸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갈등 같은 것이다. 아마 나 외에도 많은 사람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고 그때마다 모종의 딜을 시도한 사람이 많았으리라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머뭇거릴 이유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주저할 때 정가를 물었다. 그리고 듣고 합리적이라 생각해 바로 승낙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할인폭이 얼마되 보이지도 않아서가 아니고, 상품 가격 때문도 아니다. 그 사람이 파는 상품만 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를 포함해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마음가짐과 가격의 상관관계?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문가라면 가격에 관계없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물론 전문가라면 평범한 사람보다 평균 이상의 능력을 내보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의 태도를 강요할 순 없다. 또한 이것은 마지노선인 것이지 상향선이 아니다. 전문가에게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강요이자 폭행이다. 그만한 합당한 대우를 하고 나서 요구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호감을 가지고 하는 일과 그냥 하는 일에는 차이가 생긴다. 그 사람의 평균적인 실력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지만 그 사람이 호감을 갖고 상품을 제공하느냐 아니냐는 오롯이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



말로만 아닌 행동으로 존중하기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정당한 가격을 받길 원한다. 그 분야에 오래 한 사람일수록, 그리고 스스로의 실력과 능력에 자신 있어하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또한 타인에 대한 인정 욕구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상품을 구매하는 입장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 표현은 무엇일까? 타인을 인정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번 상황만큼은 상품을 정가에 구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흥정해서 1~2만 원 깎는 것은 내게 좋은 일이지 상대방에게 좋은 일은 아니다.


'팔아주는 게 어디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그건 도리어 상대방을 무시할 때 할 수 있는 발언이라 생각했다. 그와 같은 말은 상대방에게 반감을 산다. 상대방에게 마치 돈만 주면 뭐든 할 것처럼 취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속에는 존중이 없고 갑과 을만 존재할 뿐이다.



상품이 아닌 그 사람의 마음을 샀다


상대방이 제시하는 가격을 깎는 경우가 있다. 혹은 아는 사람이니까 깎아줘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주인도 있다. 대부분 인간관계를 의식한 태도이다. '아는 사람이니 저렴한 가격에 해줘야지'라든가 혹은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그렇다.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사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이득이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잃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바로 상대방의 호감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가격이 아니라 상대방이 최선을 다하여 나에게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가보다 낮은 가격을 요구하는 것은 상품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뭔가 알 수 없는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상품의 가치를 타인에 의해, 혹은 스스로 내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상품 가격을 그렇게 매겼다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가진 경험과 실력, 그리고 노하우를 고려하여 매긴 값이다. 내가 가격을 흥정하지 않은 이유는 그 사람이 그간 해온 노력과 태도를 구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인을 존중하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사소한 일로 타인을 깍아내리고 한다. 물론 돈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은 100번 공감하지만 돈이 중요한 이유는 돈을 잘 쓰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렇게 쓰는 게 가장 잘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천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적은 금액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 완벽하게 남는 장사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쟁보다 중요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