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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Jun 12. 2019

최저시급보다 대우하지 못한 나

처음 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해 알게 되면서 가슴 깊이 와 닿은 것은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였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돈이라도 모아둬야 적절한 시기에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욜로 같은 문화까진 아니어도, '티끌 모아야 티끌'이라는 적은 돈은 모아봤자 도움이 안 되니 쓸 때 써라 등의 이야기를 한참 들을 때였다.


나로서는 돈을 아낀다는 것이 크게 어렵진 않았다. 대체로 돈을 많이 지출하게 되는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고, 쇼핑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당시에 가장 많이 소비를 했던 것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인데, 정확히는 책을 보기 위해 카페에 가야 했고(집에서는 잘 안 읽히므로 주로 카페에서 봄) 그로 인한 지출이 눈에 띄었다. 그게 버릇 들어서인지, 카페에 가면 최소 3시간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보다 오래 있으면 커피나 다른 음료를 몇 번 다시 사 먹지만, '최소 시간 이정돈 이용해야지'라는 것이 내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 가성비는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그 이유 때문인지, 밖에서 약속이 있는데 잠시 시간이 빈다거나 하면 대체로 1시간 이내에도 밖에서 기다리는 묘한 버릇이 생겼다. 날씨가 좋으면 기다리는 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덥거나 추울 때엔 곤란한 상황을 겪는다. 그래서 주변에 무료로 머물 곳이 있는지를 찾아다니는데, 그런 곳은 없거나, 이미 사람들로 인해 가득 차있다. 그래서 밖에서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게 된다. 관심 없지만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거나 하는 행동을 많이 했던 거 같다.


카페는 어느 곳이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들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뽕을 뽑아야'한다는 강박증 때문이었다. 카페에서 최소 2~3시간 이상 머문 경험과 가성비를 중시하게 생각하는 내겐, 짧은 시간만 이용한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그래서 밖을 서성이거나 관심 없는 것을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 돈은 아낄 수 있었다. 그런데


카페에 들려 사 먹는 값은 얼추 4100원 정도로 잡을 수 있겠다. 저가 브랜드는 그보다 적을 것이고, 고가 브랜드는 그것보다 더 비쌀 것인데, 매장이 작은 경우는 못 들어가니 대체로 눈치 보지 않을 대형 브랜드 매장을 이용한다. 스타벅스가 4100 원, 할리스 같은 브랜드가 4100 원이니 대충 이 정도로 잡힌다.


어정쩡한 시간을 갖는 빈도가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니 일주일에 1~2회, 많게는 3~5회 정도 된다. 한잔에 4,000 원을 잡고 1주일에 평균 3잔이라고 가정하면 4,000 * 3 = 12,000 원의 수치가 나온다. 여기서 한 달은 약 4주 정도 되니까 약 48,000 원이 되고 1년을 산정하면 총 576,000 원이라는 돈을 카페에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돈 주고 사자니 아깝고, 막상 사면 잘 안 쓸 거 같아 항상 밀당을 하는 애증관계에 놓인 아이패드가 이 가격이다.


10~20분이야 기다리는 게 어렵지 않지만 30분 이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무료로 머물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자리를 찾는데도 20~30분은 족히 돌아다녀야 한다. 장소가 한정되어 있고, 있어도 사람이 차 있기 때문에 실패할 경우도 많다. 그리고 무료로 제공되는 자리는 의자만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겨울에는 덜덜 떨면서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더럭 있었다.


사람들은 기름값이 5센트 저렴한 주유소를 찾느라 한 시간을 운전하거나 무료 건강음료 시음 제품을 받겠다고 끝도 없이 늘어선 줄에서 무작정 기다린다. 아니면 싸구려 우산 하나를 얻겠다고 반나절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몇 푼 아껴보겠다고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실수를 반복한다.
-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중


나는 돈을 아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최저시급은 4000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행동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나는 무료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샘이다.



# 시간은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가치


만약 내게 30분이 있다면 무엇을 할까? 영어단어를 몇십 개 외울 수도 있고, 포스팅 초안을 작성할 수도 있다. 책을 보면 30~50페이지를 읽을 수 있고, 산책을 할 수도 있고, 가벼운 운동으로 몸 건강을 챙길 수도 있고,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을 구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료라는 것은 이런 소중한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카페에 선뜻 돈을 내며 이용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하곤 한다. 지금의 4000원 때문에 내가 할 일을 못하고 미루는 것보다는 기꺼이 지불하면서 내 할 일을 미리 끝내 놓는 것이 진정한 가성비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나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돈이라 생각했지만 투자의 개념을 배우고 나서는 시간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변수임을 알았다. 




우리는 가시적인 것에 더 잘 끌린다. 그리고 흔한 것에는 소중함을 덜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한컷 쏟아내는 빗방울에 미세먼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맑은 공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듯, 시간이라는 것은 그냥 흘러가기 때문에 소중함을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러나 최저시급이라든가, 나이의 매리트를 보면 시간이 주는 가치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유일하게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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