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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Jun 25. 2019

깻잎김치를 떼다 깨달은 것들

평소와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오물거리면서 뭉쳐있던 깻잎김치를 떼어내려 흔들고 있었다. 한두 번 흔들면 되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내 다른 한쪽 손에 숟가락을 들이밀며 떼려고 시도한다. 그때 갑자기 잎 안에서 풍미가 돈다. 밥을 오래 씹을 때 느껴지는 단맛이 입속을 가득 채운다.


밥을 먹으면서도 글을 읽는다. 영어 단어를 외운다. 뉴스를 본다. 언제부터 그랬나라고 생각해보면 꽤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거 같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탁에 앉아 TV를 보는 것처럼, 심심하지 않고 재밌거나 유용한 이야깃거리가 있나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손에 쥔다. 물론 혼자 밥을 먹을 때의 이야기다.


떨어지지 않던 깻잎김치에 느림의 가치를 깨닫는다. 밥을 먹으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도 있지만, 부족한 시간을 메꿔보려는 무의식적 노력도 자리 잡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천천히 씹히면서 느껴지는 풍미는 여운을 남겼다. 너무 급하게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며 스스로 측은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여유를 가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런 순간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천천히 밥을 먹으면서 느낀 적도 있고, 지는 석양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공원을 산책하다가 느낀 적도 있다.


40세, 不惑(불혹)


2500년 전 공자가 나이에 따라 그 나이를 부른 이름 중 하나다. 잘못된 것에 흔들리지 않고, 미혹되지 않음을 뜻하는 이 말이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느림이 주는 여유와 즐거움, 행복에 순간 나의 마음이 '느림'을 찬양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리라. 이전부터 느림이 필요한 이유를 알면서도, 중요한지 알면서도 지금껏 행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내가 느리게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뭐든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맥락과 상황, 그리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리 움직일 수 있음을 안다. 지금의 내가 바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지금 상황에 여유를 찾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기준점을 세운 상태다. 나이가 들면 변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님을 안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인지, 머리로 아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안다.


40세가 불혹이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내게 필요한지 알기 때문에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기준이 없으면 쉽게 흔들린다.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은 좋은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가 퍼져있고 거기에 이끌리다 보면 어느덧 내가 없다. 그 이야기가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안다. 


내가 느끼고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것들이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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