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가 진행되었던 독서모임 '씽큐베이션'이 끝났다. 12주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훅 가버린 느낌이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여기에 남겨보고자 한다.
본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성격에 여기서 추천하는 대부분의 종류들은 되려 익숙한 것도 많았다. 반대로 나는 다른 면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책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이전까지는 책을 빌려 읽고 서평 쓰는 것에 급급했었다. 매주 도서관에서 2~3권의 책을 빌려 읽고 서평을 남겼다. 그래서 나는 '그래 이 정도면 됐지'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런데 정작 내 인생이 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인생은 천천히 변하고 있었지만 더 좋은 방향으로, 빨리 변화시킬 수 있음에도 방관했다. '이만하면 됐지'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러다 즉각 체화할 수 있는 책을 읽고 일상에 적용해보면서 처음 깨달았던 것은 '내가 참 시간낭비를 많이 했구나'였다.
# 하마터면 대충 경험할 뻔했다
모임이 2~3주 차가 지난 이전과 같은 어느 날 밤이었다. 문득 '내가 이것을 신청해놓고 지금 무엇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책을 보고 서평을 쓰는 것은 굳이 씽큐베이션에 들어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같이 책을 읽고, 관련 서평을 쓰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기회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고, 내 서평을 봐주는 사람을 직접 만날 일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기회가 왔음에도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임했다.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야말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때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집중하여 생각해야 한다.
-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나는 씽큐베이션에 왜 참가했을까? 책을 읽기 위해, 서평을 쓰기 위해서 라고 하기에는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나의 임계점의 기준이라든가 목표가 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뽐내기 위해, 훈장 하나 달기 위해 참여하는 느낌과 스스로의 한심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제 정말 글을 제대로 써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가 있던 글을 분석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과 책 주제에 대한 연관성을 지켜보고 같은 그룹 내 인기 있는 글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내가 할 수 없는 글 종류에 대해서는 과감히 포기했고 글쓰기 팁을 준 태 PD 님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다.
이해를 좀 더 돕기 위해 <콘텐츠의 미래> 책을 읽었다. 읽는 내내 내가 쓴 글이 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는지, 내가 놓치는 것은 무엇인지 좀 더 와 닿았다. 평소 SNS와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지만 안개가 가득 끼어있는 느낌을 비로소 조금 걷어낸 느낌이 들었다. 서평과 씽큐베이션이라는 경험 덕분에 전혀 몰랐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마치 여행을 갔는데 길을 잃어 헤매다 평생 기억에 남을 잊지 못할 곳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
누군가가 보면 웃을 일이지만 내게는 의미 있는 글이 하나 있다. <지식의 가난에는 이자가 붙는다>라는 글이다. 13,000이라는 조회와 1,500회의 공유라는 기록을 세웠다. 글 내용을 보면 서평과 눈곱만큼도 관련이 없을 글이지만 간접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씽큐베이션에 들어오고 나서 이 기회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서평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더라면 절대 탄생하지 않았을 글이기 때문이다.
이 글 덕분에 같은 그룹에 속해있는 분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이것도 기분이 묘했다. 온라인 글이 빵 터진 경험이 전무한 건 아니지만 그걸로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 외에도 여기는 평소라면 나누지 않을 생각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면 이상한 취급받던 게 여기서 이야기하면 서로 경청하고 어떻게 생각을 행동으로 바꿔야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눈다. 좋은 책과 콘텐츠를 서로 추천해주는 것도 매우 좋았다.
세상에서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 그러니까 감정적인 위로 말고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에 대해 화두를 던질 때 진정으로 들어주고 고민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걸 생각해보면 이곳의 모임은 단연 최고였다. 일이든 공부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 내가 이곳에 다니면서 '왜 같이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깨달았다.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다.
# 싫어진 글쓰기, 그러나
인기 있는 가게가 유행이 지나면 자연스레 하락세를 걷듯 불을 뿜던 글도 방문자와 조회수 역시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걸 보면서 든 생각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분수에 맞지 않을 인기였다. 시니컬한 건지, 분수를 잘 아는 건지 혼동이 되지만 감정이 흔들릴 일은 없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살다 보면 어떤 결정적인 경험을 겪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여기서 누군가는 이만하면 됐어하며 그만두기도 하고, 누군가는 더 열심히 하는 계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둘 다 옳은 선택이다. 포기하면서 남은 시간 동안 다른 걸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에 유용하고, 더 열심히 한다면 자기 발전면에서 좋은 것이니까. 내게도 그것을 선택할 시간은 왔다.
그 날 이후 제목 하나에 반나절을 고민하기도 하고, 콘셉트가 잡히지 않아 머리를 끙끙 싸맨다. 메모장을 열어 글의 초안을 쓸 때면 잠자고 있던 피로함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내가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는 것은 내가 지금 겨우 익힌 방법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쓰는데서 오는 피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든 익숙하지 않으면 금세 지치고 마니까. 부족하면 익히고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면 그만이다. 그런 마음으로 끌리지 않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씽큐베이션 모집글을 보고, 신청서를 넣고, 운이 좋아 참여하게 되면서 함께 토론하고 글을 쓰면서 사람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을 이해한다는 말, 타인과 토론을 하는 방법, 서로 독려하고 성장하는 방법, 연결의 힘 등 삶에 필요한 수많은 것들을 배웠다.
다들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고 체화하셨는지 어제는 마지막 모임이었는데, <순간의 힘>에서 배운 교훈을 제대로 쓰셨다. 정작 나는 준비하지 못해 부끄러웠는데... 보면서 '아직 나는 멀었구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많이 했다.
밤늦게 집에 가면서 크게 숨을 쉬었다. 마치 긴 여행 후 집에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낯선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에겐 작년겨울에 다녀온 일본 여행보다 씽큐베이션 참여가 그랬다. 3개월간의 여행 속에서 사람을 보고, 글을 보고, 나를 보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여행이 끝난 다음날 침대에서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아, 이제 집에 왔구나. 아주 긴 여행을 했고, 다시 일상의 시작이구나' 하는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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