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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Jul 03. 2019

학습에 대한 편견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종종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전혀 책을 좋아하지도, 20대 후반까지 책은 학교와 관련된 교제를 빼면 손에 들어본 적도 없다. 세상에는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했고, 책에 대한 유용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가장 많이 들은 것은 "이제 와서 읽는다고 머가 달라지냐", "공부도 때가 있다" 등의 말이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철학책 읽으면 둘 중 하나라던데. 정치하거나, 산에 들어가거나'라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지금 와서 공부해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을 일관했다. 그들에게는 학습은 타고난 머리로 하는 것이지 '이제와 노력해서 변하는 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내게 조언한 것이다.


# 학습은 타고나는 걸까


사실 지적인 능력을 포함해서, 인간의 '능력'이 잠재적이어서 그것이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잴 수 있는 것은 단지 지적 능력이 실현된 결과일 분이다. - <철학자의 시녀> 중


우리는 어떤 결과물을 보고 그 사람의 능력을 파악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노력을 쉽게 잊곤 한다.


누군가 내게 '책을 읽는 것도, 학습하는 것도 능력이자 재능'이라는 말한 적 있다. 그것이 정말 재능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젓가락질을 사례로 이야기를 풀어볼 순 있을 거 같다. 처음 젓가락질 할 때를 기억해보자. 어색한 손놀림과 지나치게 힘을 주어 손에 쥐가 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젓가락을 쥐는 손도 편하고 사용하는데도 능숙해진다. 하지만 젓가락질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레 젓가락질이 편해질까? 그렇지 않다.


# 학습에는 정답이 없다


조제프 자코토라는 프랑스의 저명한 교수가 있었다. 그는 네덜란드 왕의 초청을 받아 네덜란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에게 배우고자 하는 네덜란드 학생들 대부분은 프랑스어를 몰랐고, 자코토는 네덜란드어를 몰랐다. 서로 간에 대화가 불가능함에도 자코토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그즈음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판으로 출간된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란 책을 교재로 정한다.


자코토는 학생들에게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참조해 프랑스어를 배우게 했다. 그들이 익힌 내용을 계속해서 되풀이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만 읽도록 했으며 그 외에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자신이 아는 단어에 상응하는 프랑스어 단어를 보고 하나 둘 깨닫기 시작한다. 선생은 여전히 네덜란드어를 말하지 못했지만, 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 프랑스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자코토는 어떤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사람을 가르치지 않았다. 반대로 학습하는 이들도 어떤 특별한 도구나 장치로 인해 시작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학습을 반복하였고, 마침내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다. 자코토가 한 일은 아주 짧은 지시뿐이었다.


#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


학습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점은 정말 어떤 보이지 않는 능력 때문일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쯤에서 <철학자의 하녀>를 쓴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내 생각에 자코토의 위대함은 그런 믿음이 아니라 그것을 입증하려는 노력에 있다. 그는 누군가가 어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그것을 능력이 불평등한 증거로 삼지 않았다. 대신에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돕고자 했다. 이것이 그가 평등을 입증하는 방식이다. - <철학자의 하녀> 중


그는 타고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해야 해낼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신체적이든 타고난 것이든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저자는 다음의 말을 남긴다.


자코토 역시 세상에 '바보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가 내린 '바보'의 규정은 남들과 다르다. 바보는 능력이 없는 자가 아니다. 바보는 다만 욕구가 멈추어버린 자들, 의지가 꺾인 자들이다. - <철학자의 시녀> 중


불평등한 현실을 본래의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때,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정말 바보가 된다. 즉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바보는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현실적 차별을 그대로 인정하고 심리적으로 수긍하기 위해 자기 능력을 부인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자코토가 보여준 사례는 스승과 교육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알 수 없는 타고난 것에 기대거나 때가 있다고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해낼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둘수록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중점을 두면 현실을 인지하고 더 나은 행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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