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근 Jun 27. 2020

죽음보다 두려워해야할 것

벌써 한 4년쯤 된 이야기 같다. 어느 날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문자 내용은 간단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친구의 어머님은 아직 환갑도 넘지 않은 젊은 나이였으며, 병원에 신세 질만큼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심각한 내용을 장난으로 보낼 친구가 아니란 걸 알았다. 그렇다. 어느 순간 숨이 멎으셨다. 정확한 사인은 심장마비. 당시 집에 아무도 없어 갑작스레 찾아온 심장마비에 아무런 조치도 못 한 채 골든타임을 놓쳤다.


공교롭게도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날짜가 추석 연휴의 시작일이었다. 명절과 겹치다 보니 빈소에 찾아오는 이는 매우 적었다. 평소 지인의 경조사를 많이 다니고 많은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던 친구였지만, 날짜가 그렇다 보니 대부분 쉬이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상주인 친구는 제 역할을 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그러다 마지막 발인 때에는 서서 펑펑 울었다. 드디어 긴장이 풀린 건지 조금 생각할 여유가 있었던 것인지 아무튼 그랬다.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강렬히 남아있다. 어깨가 작아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본다는 것이 이런 건가 싶었던 것도 처음이다.




언제부턴가, 죽음을 직시하기로 했다. 아마 책을 읽게 되면서 그런 거 같다. 참 웃기게도, 이전까지는 '어떻게 사람이 쉽게 죽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역사적 사건을 보면서 사람은 정말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에는 생명을 위협할 도구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계곡이나 바닷가에 익사해 죽었다는 뉴스는 이전까지는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이젠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쉽게,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다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3일 동안 지낸 후 집에 돌아가 어머니 얼굴을 보니 죽음이 떠오른다. 언젠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죽을 텐데 라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를 어떻게 보내드려야 좋은 걸지, 그 기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감정은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생각하니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지고 답 없는 고민만 늘어갔다. 여전히 그 고민들의 해답을 찾아내진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반드시 올 거라는 것을 안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관찰하고 준비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모른 체 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죽음이 오기 전까지 어떤 행동과 태도를 가질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질문이 이어졌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유튜브 영상중 하나는 50번도 넘게 본 게 있다. 아마 곧 100번을 넘길지도 모르겠다. 조회수가 33만 정도 나오는 영상에 내가 어느 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다. 영상의 제목은 [죽음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이 영상을 몇십 번이나 돌려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삶에 대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꽃은 무엇을 무서워한다고요?  
안 핀 것을 무서워한다고
지는 것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해봤자 의미 없다'라든가, '열심히 해서 뭐할래'라는 말에 멋진 반박이었다. 지금 정도 나이를 먹어보니 '어릴 때 공부 좀 잘해둘걸'이란 후회를 한다. 왜 그런 후회를 하는 걸까. 연봉이 작아서? 직장 내 차별을 받아서? 승진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모두 틀렸다. 내 인생에서 스스로에게 보다 좋은 선물을 주었어야 했다. 성취로 인한 보람과,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를 남기지 못했기에 후회를 했다. 지금도 힘들 때면 이 영상을 틀어둔다.


부처의 존엄성은 신체 기능의 소멸과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신체 기능이 항상 소멸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존엄성은 자유의 가장 위대한 표출이다. 육신에 벌어지는 일 때문에 훼손되지 않는다.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나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걸까. 한 가지 발견한 것은 이룬 것이 없으면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매우 떨어진다는 사실이란 점이었다. 크고 작은 것도 중요하겠지만, 빈도 역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력서에 쓴 1줄 이력보다 진행하면서 경험한 것을 장문의 글로 남긴 것이 더 값졌다.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지만 배우는데 공을 들인 기술을 종종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때도 보람을 느꼈다. 조각 하나하나는 작았지만, 모아보니 제법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삶을 제대로 못 살아 낸 것을 무서워하라고.
그럼 많은 부분들이 아마 정리가 될 것 같아요.
- [죽음보다 두려워해야 할 것] 중


내 방 한 곳에 붙여놓은 이 문구를 매일 본다.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때로는 흘리듯이 보기도 하지만 힘들 땐 눈에 확 들어온다. 잊을만 할 때 쯤이면 다시 상기된다. 죽음이 내게 멀지 않음을 느끼기에 지금 삶에 감사하게 되고 허투로 살고싶지 않다고 다짐을 한다. 


내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보다 어떻게 살았는가 에 대한 자문이기 때문이다.




서적: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5221169&start=slayer


영상:

https://youtu.be/4y0g3Eo3Ov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