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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Jan 01. 2021

회사에 다니면서 무엇을 남기면 좋을까 생각했다

2020년을 보내고 2021년이 된 오늘, 작년에 한 것들을 되돌아봤다. 하나씩 정리하다가 문득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내 만족이 된 성과들은 모두 남긴 것들에 한하고, 소위 말해 실패한 것들은 대부분 타인을 중심으로 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A라는 시스템을 만들면 B라는 사람에게 인정받겠지’등이 그랬다. 



작년에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다. B2C 서비스 개발을 맡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CS건이 접수되었는데 매일 1~3건 이상 반복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모아 개선하면 CS팀도, 그리고 유관부서도 반복된 일, 혹은 전화 한 통화라도 덜 받겠지 싶어 개선하려 맘먹었다. 어떤 것은 하루면 뚝딱 하는데 반해 어떤 건은 결제같은 민감한 것과 연관있어 쉽사리 수정할 수가 없었다. 


굳이 이런 위험을 안고서 할 필요가 있을까? 처음에 든 생각은 그랬다. 개선한다고 하다가 시스템이 오류가 나고 멈추게 되면 비난의 화살은 모두 내가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고, 더 의미 있는 일을 찾는데 도움을 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잡아내고 마침내 1주 평균 0~1건 수준까지 올렸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누군가는 나에게 어떤 고마움의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덜 친해서인지, 아니면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해당 일은 내 성과지표에 1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구태여 시간을 쪼개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했던것에 반해 돌아온 것은 무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었다. 어쨌든 좋은 일을 했다는 스스로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런 일도 있었다. 지금 관리하는 시스템은 작지 않은데 반해 인력이 늘 부족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 그러면 늘 일에 쫓기듯 지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시작한 것은 자동화였다. 내가 할 일을 대신해줄 시스템이 있다면 내 시간을 꽤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분명 어려웠다. 잘 모르는 것을 학습해야만 했고, 실시간으로 운영되는 서비스에 적용하기 위해 직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수많은 자가테스트를 하면서 마치 벽돌쌓듯 하나하나 올렸다. 마침내 완성된 시스템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작동했다. 만든 시스템중 어떤 것은 대부분 시스템에 바탕이 되는 역할을 했다.


시스템이 개발되고 나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분명 나였다. 누구든 나에게 그것을 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으므로 내게 필요한 것 위주로 먼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회사에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시스템을 이용하는 유관부서가 1~2년 전에는 할 수 없는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뭐든 그렇듯 제대로 말하고 전달하지 않으면 그것이 고마운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나의 목표는 명확했고 충족했기에 괜찮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바꾸려는 생각보다 무엇을 남기면 좋을까 하는 생각. 둘 다 시스템을 바꿨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전자는 타인을 위해 바꿨고, 후자는 나를 위해서 바꿨다. 그리고 관련 사람 모두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치있고 의미있게 쓰이길 바랐다. 매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같은 일을 처리하여 허무함을 느끼는 것보다, 그런 반복적인 작업은 내가 줄여줄 테니 더 창의적인 것, 능동적인 것, 그래서 더 높은 가치를 꿈꾸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내 관점으로만 이야기를 썼지만 사실은 몇몇 사람은 내 편의를 꽤 봐주고 있으며 덕분에 나는 편하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런 문화가 좋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방식으로 주고받는 것. 그래서 상대방의 문제점을 내가 발견/해결해주고 상대방도 내게 보이는 문제점을 돕는 것 문화. 서로 돕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문화에 사는 것은 심리적으로 높은 안정감을 준다. 이건 분명 좋은 경험이다.


올해는 이런 생각을 좀 더 강화해보고 싶다. 감사함을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베푸는 방법으로 발전해보고 싶다. 그러기에 지금의 시스템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뗸 수준이다. 더 많은 가치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오늘도 책을 펴고 인강을 듣는다. 회사를 떠나도 그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 남듯, 내가 떠나도 향기가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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