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제법 유명하다. 적지 않은 유명인들이 이 책을 명저로 꼽고 있었고, 복잡한 문제인 이데올로기에 관한 비판을 소설로 매우 명징하고 읽기 쉽게 써 내려갔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유명했기에 과거에 읽어봤다. 2017년 1월에 서평이 쓰여있는 걸 보니 약 2년이 넘은 거 같다. 그러다 최근 사내 독서모임의 지정도서로 지정되어 다시 손에 들었다. 그때는 도서관에서 빌려봤고, 이번에는 직접 구매해서 봤다. 딱히 심경변화가 있던 것은 아니다. 도서 지원이 있어서 사서 봤을 뿐이다.
이 책은 내게 있어 2번째로 읽는 책, 즉 재독이다. 때문에 어떤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는지 머릿속에 어느 정도 들어있는 상태였다. 결과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읽는 동안 왜 내가 이 내용에 대해 푹 빠져들 수 있는지 생각해보니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이제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겨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읽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과거의 생각이나 이념, 혹은 습관적으로 학습하던 것들을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당시에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에 푹 빠져 있었다. 때문에 자본주의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딱히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소위 말하는 기득권이 어떻게 핍박을 하는지에 대해 통렬하게 보여주는 이 책이 꽤 맘에 들었다.
등장인물 중에 '복서'라는 힘이 센 말이 있다. 이 말은 다른 동물에 비해 힘이 엄청 세기 때문에 힘든 일도 척척 해낸다. 게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일한다. 나폴레옹이라는 돼지가 권력을 집권하게 되면서 동물들의 생활이 점점 핍박해지는 가운데서도, 그들이 힘들여 만들던 풍차가 폭파되는 와중에도 복서는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고 마음먹는다.
(복서) 정말 모를 일이야. 이런 일이 우리 농장에서 일어나다니. 우리 자신이 뭔가 잘못돼 있어. 내 생각으론,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아. 지금부터 난 아침에 한 시간 먼저 일어나야겠어.
그러다 마지막에 힘이 다했을 때 말 도축장에 끌려가 죽게 된다. 지배층은 그를 정말 '도구'취급했던 것이다.
과거에 나는 복서가 그저 멍청하고 어리석었다는 것으로 머릿속에 정리했다. 너무 일만 추구하는 바보는 결국 머리가 좋은 돼지에게 보기 좋게 이용당하고 버려졌다.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좀 더 현명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을 때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이전에 복서를 그렇게 정의한 면에서 나는 '내가 지금 무분별하게 노력만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까?'라는 전제가 빠져있었다. 어리석은 것은 공부하면 되지 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복서 역시 마찬가지리라. 그는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말년에 들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면 배우지 못한 알파뱃을 공부해볼 거야' 라며 다짐하는 게 전부였다. 만약 그가 알든 모르든 간에 좀 더 일찍부터 시작했더라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만약 그가 1시간 덜 일하고 공부에 매진했더라면 그는, 그 동물농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경험은 나도 있었다. 나 역시 책을 보면 똑똑해질 거야 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책을 탐독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이런저런 책을 많이 보았지만 내게 남는 것은 그 노력에 비하면 참 적지 않나 라는 생각을 최근에야 비로소 하게 되었다. 무분별하게 읽기만 하지 말고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지 기록하고, 반성하며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동물농장>을 재독 하면서 본 복서의 모습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내 삶에 주인이라 생각했지만 묘한 가치관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었다.
#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보다
이미 아는 내용이기에 전개되는 이야기가 조금 친숙하다. 친숙하니까 이제는 좀 더 디테일한 면을 보게 되었다. 지배층은 피지배층을 어떻게 교육시키고 학습시켰는지, 스노볼이 사라진 후의 나폴레옹의 독재정치가 시작되면서 권력은 어떻게 부패하는지, 평등을 외치고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일의 결과는 어떻게 타락하고 배반되는지를 말이다.
이는 내가 이전보다 이데올로기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모임이나 회사, 팀 분위기와 많이 대조하면서 봤다는 점도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에는 어떻게 평등을 지킬 것인가에 대해서 봤다면 지금은 조금 다른 시선에서 보게 된 거 같다. 사회에서 완벽한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가능했다면 이미 몇 세기가 지난 프랑스혁명의 세 가지 키워드인 자유, 평등, 박애 가 헌법에 박혀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서로를 '배려'할 수 있기에 평등하진 않지만 대우에서 평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어떻게 간극을 줄여서 서로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평등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책이라고 말하며 타인에게도 적극 권장하는 책이긴 하지만, 내가 읽을 책을 고를 때는 배제되었을법한 이 책을 재독 하게 되면서 정말 많은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보는 내내 이 재독의 중요성을 어떻게 말로 풀어야 할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강렬한 임팩트였기에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었던 나의 의식적 노력이다.
낯선 것은 나에게 흥분과 흥미를 유발한다. 그래서 뇌가 풀가동하면서 이것저것 흡수한다. 그 과정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인지 아닌지 필터 할 시간이 부족하다. 반대로 익숙함은 정신적 안정을 주기 때문에 여유가 있지만 다소 따분하다. 하지만 익숙함을 조금만 비틀어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내가 진정 이전부터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며 과거의 생각을 떠올려본다. 재독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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