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다는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글에서 강자의 정의는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약자는 옳은 선택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이나 기업과의 갈등 등 드러나는 싸움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힘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자기들이 원하는 것으로 요구하기 마련이다. 미국이나 중국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은 결코 약자들을 위해 보살피는 협상을 하는 것보다 자국의 이익이 최선이 되는 선택을 주로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강자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협상하는 관계라 하더라도 더 많은 패를 쥐고 있는 사람, 더 유리한 사람이 유리한 조건을 가져가게 된다.
이익이라는 게 모두 윈-윈 하는 것만 있으면 좋겠지만 어떤 환경에서는 어느 한쪽이 가져간 만큼 반대쪽이 포기해야 되는 상황도 자주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영토를 빼앗는 과정이 그렇다. 강자가 더 많은 땅을 달라고 했을 때 반대편은 그로 인한 어떤 요구를 요청할 순 있지만 만약 땅 가치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중세의 경우엔 그것보다 치명적인 게 없었을 정도다.
다만 여기까지 말한 것은 상대적인 강자, 즉 강자와 약자가 구분되는 선에서의 이야기다. 만약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약자는 영원히 노력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강자가 더 많은 것을 차지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자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강자가 되진 못하더라도 상대방이 섣불리 대할 수 없는 정도의 강자는 될 수 있다. 가령 지금 반도체가 그렇다. 반도체를 수출해야 하는 입장에서 기업은 누군가에게 약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 세계 생산량의 60%를 넘기 때문에 그리 간단하게 판단할 수 없다.
같은 약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핵심 패를 갖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은 천지차이다. 그러나 약자라고 생각하면 대부분 후자라고 생각하며, 전자는 =강자라는 공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상황상 강자처럼 보이는 약자도 있고, 약자처럼 보이는 강자도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자신이 지금 약자라고 생각한다면 강자를 이길 수 있는 필살기 한 개 정도는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 노력을 게을리하면 영원히 약자 입장에 있게 된다.
패가 없는 약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약자는 옳은 선택지를 가질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협상 자체를 할 수 없는 항상 당하는 입장이 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반사적으로 수동적인 선택지를 선택하게 된다. 학습된 패배감에 물든다.
강한 사람이 되자. 약자가 되고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남는 건 불리한 선택의 연속으로 인한 좌절감과 무력감, 그리고 상실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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