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고록은 두개로 나눠야할 것 같아서 이렇게 쓰기로 했다. 첫번째는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이자 배운게 많아 꼭 써야겠다고 생각한 바로 '이직'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키워드로 주제잡아 쓰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한 회사에 3년을 다닌건 정말 오랜만인거 같다. 돌아보면 한순간에 지나간거 같단 생각도 든다. 첫 입사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도 나름 계획이 있었는데 그중에 모두 다 이루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기간동안 의미있고 즐거웠으며 여운이 많이 남는 회사였다. 그래서 이직을 결정하는 것도 쉽진 않았다. 그럼에도 가야할 길이기에 결정하게 되었다.
이직을 결정하게 된 것은 10~11월 즈음. 이전까지 도움을 준 회사에서 이직 제안이 왔다. 사실 이전에도 몇번 왔었는데 그때마다 거절했다가 정말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근 한달간을 고민했는데 대우(연봉)은 더 좋긴 하지만 종합적으로 이게 더 좋은건지는 단순히 연봉만으로는 계산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익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기업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회사. 그래서 초반만 해도 안정적인 회사냐 vs 모험이냐 를 고민했던거 같다. 그렇게 1~2주 고민해보니 한가지 머릿속에 스치는게 있었다. 연봉보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아주 간단했다.
2년 뒤에 난 어떻게 불리고 있을까?
이전 회사에서 계속 다닌다면 기껏해야 팀장정도 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이것은 가정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대체로 회사에서 인사 및 승진 사례들을 보면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마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때도 'XX회사에서 팀장하고 있어요'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다른 회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녔던 회사에서의 팀장이란 권한이 매우 작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주어진 인력으로 시스템을 잘 활용해서 서비스하는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과 본부장님과 면담을 하면서 꽤 파격적인(이전회사치고) 제안을 받았지만 이런말을 했다.
이 회사에서 IT는 100이라고 수치를 보면 10, 많아도 20이 될까말까 한거 같습니다. 저는 IT가 전부인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몇년전 개발베이스 회사(네이버, 카카오 등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에 갭이 있다는 말을 제법 들었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던 이유는 어차피 하는 일은 둘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왜 그게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투자에 대한 관점'이란 소제목에 자세히 다뤄보려 한다.
때문에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고, 그로인한 인수인계, 그리고 마무리에 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직 의사를 확실히 밝히면서 떠날준비를 했다.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니 벌린것이 너무 많았다(지금 생각해보면 멤버십이라는 500만 이상의 고객 서비스를 혼자(또는 두명) 담당했는데, 왜 또 벌렸는지...). 그러다보니 인수인계를 하는 과정도, 그리고 해야하는 범위도 쉽게 산정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장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1차 마무리 해달라는 부탁(이것도 1인개발)을 들어 개발하던 와중, 1월이라 해가 바뀜에 따라 해야하는 수많은 일들이(약관안내, 2021년 정산 이슈) 한번에 덮쳐왔다. 새로 개발하던 프로젝트의 QA는 어찌저찌 통과했는데 결국 인수인계가 매우 부진해졌고, 결국 서로 불편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과연 무엇이 옳았을까?, 다시 되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라고 물어본다면 지금은 명확히 애기할 수 있을거 같다. 인수인계가 최우선이고,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거라고.
일이 많았던 탓에 핀잔도 들었다. '왜이리 많이 벌렸냐', '남아있는 사람이 고생이다'라는 말을 들었던거 같다. 그말에 십분 공감하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직력이 경쟁력이라는 말을 새삼 깨달았다. 이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인수인계 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팀은 1인 1파트 담당으로 구성되어 있고 IT에 지원이 부진했던 탓에 거의 모든일을 한명이 도맡아 했다. 어쩌면 최근 벌려졌던 일들은 어찌보면 간단한 인수인계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아직 서비스가 무르익기 전이라 누군가 전담하여 서비스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맡았던 멤버스 시스템(멤버스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 인프라, 서브모듈 포함)은 오랫동안 1인(또는 2인. 중간에 후임이 다른대로 이직)이 했었기에 자동화, 혹은 해당 시스템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모듈들을 만드는데 꽤나 주력했었다. MSA를 할 여력은 없었지만 대용량 처리건은 분리하여 본 서비스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했고 자동배포 구축, 일일 정산 대사 시스템(나중에 폐기했지만) 등 다양한 것을 만들어 다방면으로 서포팅했다. 온프레미스 서비스를 클라우드로 이관하는 것도 혼자 진행했다(원활한 이관을 하기 위해 검토용 모듈이 5개 정도 되었다. AWS를 직접 구축, 파기하면서 이관 시뮬레이션을 혼자 5번정도 수행하며 오류격차를 줄였고 결국 다운타임 1시간 이내로 서버이전을 완수). 최대한 오류이슈를 줄여서 사람의 손을 타지 않도록 노력하는게 나의 목표였고, 그것은 어느정도 이뤄져 갔다.(관련글 링크: 2020년 회고록) 어찌보면 그 모듈들 덕분에 몇년동안 장애가 생겼어도 금새 넘겨온거 아닐까 생각도 한다. 혼자서 유지보수도 하면서 신규 개발을 커버할 시간을 벌어준 것들도 모두 그 덕분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이 모든것을 인수인계하려니 그양이 너무 방대했댜는 것이다. 차라리 2달 전인 11월부터 인수인계에 집중하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일전에 문서를 만들면서 시스템을 운영해야 겠다고 생각한적도 있었는데, 그때 그 말을 그대로 했었다면 어땟을까 생각하며 자책도 들었다. 그래도 1월까지 해주기로 한 것도 이직할 회사의 대표에게 양해를 구해서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에, 더는 퇴사일을 미룰 수 없고 대략 마무리 하여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여러가지 사정이 더 있었지만 회사의 선택도, 그리고 욕을 들어먹더라도 인수인계를 고집하지 않았던 내 자신의 태도도 모두 반성요소라고 생각했다.
회사에 감사하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기술적인것 뿐만 아니라 큰 회사에서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 사람을 대하는 법, 정치 및 권력관계 등 다양한 것을 직,간접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구조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나는 내가 맡은 분야, 혹은 나와 접점이 있는 분야에서의 관계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전회사가 프렌차이즈 회사다보니 프렌차이즈 시스템, 그리고 회사가 메인으로 서비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접점을 보는 것은 훨씬 더 큰 범위에 속해 있었으며 서비스를 기획할때마다 그에 따른 이해관계를 매번 생각, 고려하게 되었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대국민 서비스를 담당했기 때문에 고객과의 접점까지 고려하여 시스템과 조직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던거 같다. 모든것을 다 커버할 순 없었지만 기술을 가운데 놓고 회사의 입장과 고객의 입장을 조율하면서 시스템을 운영한다는게 어떤것인지를 배웠다.
회사에서는 도서비를 지원해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정말 많은 책을 봤다. 그중에 경영/리더십/팀워크/자기계발 관련 책을 유독 많이 봤는데 그것을 실제 회사와 대입하면서 보니까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게 좋은건지를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실패한 것들도 있지만 그런것도 모두 내게 필요한 경험이라 생각했다.
조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하는지를 배우고, 어떻게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지를 배웠다. 일을 할때에의 이해관계는 좀더 복잡하다. 자칫 잘못하면 그 사람의 일이 되고, 책임까지 덮어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묘한 힘겨루기 상태에서 어떤곳에 권력이 모이는지, 그 권력을 해체하려면 어떻게 해야하고 어떻게 협력을 이끌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 과정이 꽤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서로 다른 분야지만 그들의 고충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던거 같다. 이분들과는 회사를 나와서도 뵙게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길 희망한다.
최근 몇년간 기업이 IT화 한다고 뉴스에 떠드는 것을 종종 본다. 그래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거라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무엇이 발목을 붙잡을까? 이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이전엔 회사가 'XX에 투자하여 미래에 도약할 겁니다'라는 말을 예전에는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투자를 하네 마네 문제가 아니다. 생각으로부터 혁신이 필요하다.
회사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이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개개인이 뛰어난 퍼포먼스로 감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엔 조직력, 시스템에서 결정난다. 회사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곳이고, 시스템이 경쟁력있게 만들면서 수익을 벌어들인다. 마치 공장을 짓듯 말이다. 시스템이 어느정도 안정화가 되고 운영으로 넘어가게 되면 만들때 들였던 비용 대비 적게는 1/2, 많게는 1/10을 절약할 수 있다. 때문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곳에 인력 및 지원이 대거 투입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인력충원 하는 과정을 보면 회사가 진정 어디에 주력을 두는지 알 수 있다. 인사를 1~2명 뽑는건 아직도 간을 보고 있다는 증거다. 혹시나 내 말이 맞을지 틀릴지 알 수 없기에 스스로 한가지 반박을 해보았다. '무엇을 만들지도 모르는데 왕창 뽑는다고 해결이 되나?'라고. 그런데 이런 생각 자체가 함정이었다. 애초에 사람이 많아야 자원활당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실행할지를 고민할 수 있다. 요리를 배우는데 매일매일 적당량만 사면 음식을 개발할 수가 없다. 쓸 수 있는 재료가 딱 정해져있기 때문에 어떤 실험이나 도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적당량이 어느정돈지도 모르는데 아기걸음 수준으로 조금씩 늘리는걸론 티도 안난다.
어느 임원은 이런말을 했다. '여기서 실적이 나야 사람을 충원하고 개발을 시키죠'. 응당 맞는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때문에 제대로 개선이 안되는 것이다. 어떨때는 시작도 못한다. 즉 정말 투자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과하다 할 정도로 퍼부어야 한다. 예를들어 학습이 그렇다. 학습을 할때 시험보듯 딱딱 정답만 맞추면 시험은 잘 맞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며칠뒤면 다 까먹는다. '시험이라는 전투'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며칠뒤에 다 잊어버리면서 '성장을 위한 학습이라는 관점에서의 전쟁'에선 지는 것이다.
'사람을 그렇게 뽑으면 회사에서 돈이 얼마가 들고...그들을 그대로 유지하는건 어떻고...'이런 고민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 이미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가성비부터 생각하는 것이다. R&D에서 가성비는 나중에 고려해야 할 요소다. 당장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지 여부를 놓고 봐야할 자리에 최적화를 염두한다는 것은 혁신과 변화가 아니라 개선이란 표현이 걸맞다. 이전 회사 역시 IT에 투자를 해서 혁신을 끌어올리겠다고 하는데 부디 잘 해냈으면 좋겠다.
복잡한 감정이 들지만 떠날 사람은 떠나야 한다. 그리고 떠날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그게 어떤 감정이 들든, 감사한 마음만은 소중히 간직하고 떠나는게 미덕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나 역시도 즐겁게 성장할 수 있었고. 이제 2년뒤에 되고싶은 내가 되기위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버려야할지 옥석을 가리는 중이다. 이직할 회사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준비, 검토해야 보고있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가지 않는다. 이직도 사실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결심이 필요했기에 결심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내가 준비한 것에서 우연하게 온다. 0에서 나오는건 없다. 0.01%의 가능성이라도 남겨놓아야 하며, 기회가 오면 언제든 뛰어나갈 수 있게 준비를 해두어야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
아직도 이직이 기회일지, 아니면 다른것일지 알 순 없지만 이럴때일수록 내가 해온 것들을 믿을 수 밖에 없다. 모든것을 벗기고 벗기다 보면 결국 믿을 수 있는건 나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함께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lemontia/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