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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Oct 16. 2019

다름은 경청이 되어야 한다

다름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머릿속에 궁금증이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1+1=3이라고 한다면 이건 명백한 틀린 것이 아닐까? 이런 것도 다름이라고 존중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었다. 1+1=2 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숫자에서 만큼은 1+1=2라는 공식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숫자에 대한 모든 신뢰가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틀린 숫자에 대한 파장은 엄청나게 크다. 만약 내 통장에 100만 원이 있었고 월급으로 100만 원이 입금되었는데, 통장잔고를 확인해보니 150만 원이 찍혀있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친구에게 10만 원을 빌려주었는데 8만 원이 입금되었다. 친구가 '우리 사이에'라며 너스레 웃는다면 얼마나 벙질까.


과연 이런 현상을 다름으로 존중하기엔 너무 황당한 일이다. 그렇다. 누구나 그건 정신 나간 거 아니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틀림과 다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다름에 대한 미학이 자주 언급되는 곳 중 하나는 취미나 성향, 즉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것에 많이 활용된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오타쿠 짓좀 그만해'라고 하는 것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언행이다. 그가 만화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고, 만화책이 사회적 악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치 '나쁜 행동이니까 그만둬'라는 말투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다. 또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항상 올바른 말과 행동만 하진 않을 것이다.


가장 애매한 것은 목표가 같거나, 혹은 방향(혹은 미래)에 대해 언급할 때일 것이다. 그 방향이 결코 좋지 않은데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어떨 땐 내 말이 맞겠지만 어떨 땐 상대방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이처럼 큰 변수를 안고 있는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때는 틀림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이 그것을 선택한 이유를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대부분 확률이다. 내일 내가 로또에 당첨될지, 길을 가다가 넘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넘어지고 나서야 원인이 파악되고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때론 주변 사람이 나보다 먼저 간 길을 경험해보고 나에게 알려주거나 조언해주기도 하지만,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경우는 매우 희박하다. 그 사람이 실패한 게 나는 성공할 수도 있고, 내가 성공한 게 그 사람에겐 실패가 될 수 있다.




1+1=2이다. 그런데 1+1=11이라고 말한 이가 있다면 그에게 틀렸다고 말해야 할까? 1+1은 2가 아니라 11입니다 라고 말한 사람은 복지국가의 기초가 된 <베버리지 보고서>의 모태 격인 <마이너리티 보고서>를 쓴 시드니 웹의 시드니가 청혼하면서 한 말이다. 1+1 은 샘 법상으로는 2이지만 1을 사람으로 대입하여 사람+사람 공식을 내면 엄청난 확장이 이뤄진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단순 수치로 정형화할 수 없듯이, 1+1은 그것이 어떤 것이고 어느 상황에 쓰이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한다. 


다름을 존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1+1을 내 지식선에서 생각하는 의미가 아닌 그 사람이 이해하는 1+1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과정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그 오묘함 속에 세상에 다시없는 엄청난 아이디어가 솟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 가능성을 내 지식으로 한정 짓고 선을 긋는 것은 그릇된 행동이다. 때문에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다름은 경청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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