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발을 내딛던 때,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버스 안에서 만났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친구가 대뜸 '선생님이 되면 어떨까?'라고 물어봤다. 그때 나도 모르게 '별로 어울리는 거 같지 않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로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만큼 어떤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몇 년 뒤 안부를 들었을 때, 그 말을 듣고 뒤돌아 섰었다고 했다. 내가 만약 그때 '왠지 잘 어울릴 거 같아'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종종 과거를 가정한다. 그때 멘토를 만났더라면, 그때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그때 직장을 계속 다녔더라면 등. 이미 떠나버린 과거이기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종종 과거를 가정하고 파생하는 미래를 상상한다. 만약 내가 그 친구에게 좋은 말을 했더라면, 그래서 그 친구가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거봐 내가 잘 어울린다 했잖아'라고 말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그렇게 되면 서로 좋은 것이고, 만약 안된다 하더라도 손해 볼 것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말을 건넬 때는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레 건넨다. 그 말이 어린이에게 큰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되기 때문에, 아이의 펼쳐질 미래에 먹물을 쏟지 않기 위해 그렇다. 그런데, 어른이면 괜찮은 걸까. 어른이면 필터 없이 말해도 되는 걸까.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시점에 도달할 때마다 새로운 도전과제를 준다. 어떨 때는 학업이라는 말로, 어떨 때는 취업이라는 말로, 어떨 때는 결혼 또는 정년퇴직이라는 말로 머리를 들이민다. 때문에 어른이라 하더라도 낯설고 어려운 것들을 참 많이도 직면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는 취업이지만 모두에게 취업이 일생에 처음인 순간이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부모가 되지만 누구나 부모가 처음인 순간이 있다. 때론 떠밀려 되는 경우도 있고, 준비를 한껏 하고 맞이하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처음이기에 대부분 미숙하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이와 다를 바 없는 거 아닐까 싶다. 생전 처음 겪는 경험에 익숙지 않은 무게와 책임감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지만 그것을 미처 깨닫기 전에 점점 익숙해진다. 그렇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어른 역시 괜찮지 않다. 아이들이 처음인 것처럼 어른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나에게 했던 질문에는 큰 무게를 두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팽팽한 저울추에서 솜털 하나가 올라앉아 한쪽으로 기울게 되는 것처럼, 만약 내가 '너에게 딱 어울려'라고 했다면 적어도 솜털 같은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