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근 Nov 04. 2019

쓸모없는 것에 찬양하기로 했다

제목과 참 어울리지 않게 나는 쓸모없는 것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없는 것에 대해 찬양하기로 한 것은 몇 가지 계기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세상은 그리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로 효율적으로 하겠다고 하면서 전혀 엉뚱한 것으로 더 비효율적이게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후자에 대한 이야기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든다고 한다. 그 말 십분 이해한다. 나 역시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게임을 너무 재미있게 할 때도,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때도, 일이 술술 잘 풀릴 때도 그랬다. 그러니까 나는 몰입이 주는 즐거움을 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항상'몰입하는 방법은 잘 모른다. 몰입은커녕 때론 너무 하기 싫어 주야장천 미루다가 헐레벌떡하기도 한다.


이전엔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요즘은 집에 가는 게 편하다. 그래서 퇴근길에 카페 대신 집을 선택한다. 집에 가는데 절대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마음이 헛헛해 마트에 가고 열에 아홉은 한 손에 과자를 쥐고 나온다. 내 연약한 위장은 밤에 과자를 먹으면 소화를 잘 못 시키고 심할 때는 다음날까지 피로를 느끼게 한다. 그 느낌은 딱 안다. 아침에 벨소리를 듣고 일어나려 할 때 유독 일어나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대부분 전날 과식을 했거나 속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어서다. 위가 음식물을 구겨 넣어 밤새 일하게 했으니 복수하는 것 같다. 마치 회사에서 야근시키면 당장은 일하지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 마침내 어떤 형태든 복수하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위를 과소평과 했다. 위는 제대로 복수한다. 지를 해고 못할걸 아는 거지.


몇 년 전만 해도 퇴근하면 항상 카페를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안 가게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로 저녁에 먹은 커피가 숙면을 하는데 방해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은 이후부터다. 잠을 자면 새벽에 꼭 한번 깬다. 처음에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 깼는데, 알고 보니 커피를 마시며 오는 각성효과와 온몸에 빠져나간 수분이 콜라보를 일으키며 수면을 방해한다. 그래서 저녁에 커피 마시기를 슬금슬금 피했더니 어느 순간부턴 카페로 가는 발걸음마저 끊겼다. 다른 음료를 시켜먹어도 되겠지만 저녁에 괜히 부담되는 음료를 먹고 싶지 않은 모호한 반항심도 있었다.(과자는 잘도 주워 먹은 주제에)


웃기게도 카페가 아닌 집으로 가니 효율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현실은 유튜브다. '유튜브도 유익한 거야!'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잘 알지 않은가. 10개를 보면 그중 반은 쓸데없는 걸 본다는 걸. 아니 그 이상이려나. 정작 해야 할 일은 내일 해도 괜찮겠거니 하며 미루거나 덮는다. 연쇄효과라는 것은 참 무섭다. 전날 왜 그랬지 하며 전날을 살펴보면 내 의지가 약해, 게을러서라고 지금껏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카페를 가지 않고 집에 가면서 과자를 사가는 버릇이, 집에서 먹은 과자에 위가 깃발을 치켜들고 나를 피로하게 만든다는 것이, 집이라는 이유로 옷을 홀랑 벗고 있어도 괜찮은 편안함이, 이 모든 것이 나의 게으름에 한몫하지만 정작 내가 기억하는 것은 '집에 가니까 게을러진다'라고 말하는 것이 말이다.


내 머릿속은 항상 '돈은 도구일 뿐이야'라고 스스로 되뇌지만 하는 짓은 돈이 가장 큰 결정권을 지닌다. 효율성을 돈으로 엮어 생각하는 버릇 때문이다. 사실 알고 보면 저녁에 보내는 그 몇 시간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앞으론 쓸모없는 것에 찬양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좋은 말을 해줬더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